스토리1

음악에 대한 헌사

주혜1 2025. 6. 22. 13:40

음악에 대한 헌사
      조광호신부
  
이 짧은 *음악에 대한 헌사*를 말 없는 위로와 영혼의 손길로 수십 년간 연주회에 초대해 주신 피아니스트 신수정 선생님께 바쳐 드립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신수정 선생님,

선생님의 건반 위에 내려앉은 음표들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선생님의 생애를 조용히 품어 안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손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연주는 말보다 깊고 침묵보다 분명한 언어였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곳에서 영혼과 영혼이 마주하는 그 순간을 넘어, 잠자는 영혼을 흔들어 일으켜 세워 주는
손길이었습니다.

한 음 한 음, 선생님의 손끝에서 피어난 선율은 시간을 잊게 했고 슬픔조차 아름답게 하였으며, 삶의 피로를 한 겹씩 벗겨내며 마침내 고요한 내면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생명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그 모든 초대의 날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작은 빛줄기처럼
거룩한 선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음악은 제 안에 있는 어두운 방을 하나씩 밝혀주는 빛이었습니다.

오늘, 그 빛에 감사하며 이 조용한 글로 헌사를 바칩니다.
삶의 굽이굽이마다 함께 흐르던 그 음악이 곧 저의 작은 기도이자 시간 너머의 기억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하나

음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어보다 먼저 이 세상과 인간 사이에 존재한 소리의 몸짓이었습니다. 흐름 위에 태어난 인간의 그 모든 무상함 속에서 흔들리는 영혼의 숨소리, 빗겨가는 바람 속에 단 한 순간도 온전히 자기 자신을 놓아줄 수 없는 인간에게 음악은 그 결박의 동아줄을 물길 스미듯 풀어주었습니다.

음악은 세상의 그 어느 견고한 벽도 순간에 허물어버리고, 죽어가는 모든 것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는 위대한 생명의 신의 숨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음악은 말보다 먼저 울리는 흐느낌이나 통곡, 기쁨에 겨운 웃음, 자장가와 전쟁의 북소리까지—인간의 내면에서 가장 먼저 반응하는 '숨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의 질서가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음악은 *신령한 혼의 몸*이었으며, 존재 깊은 곳에서 발화되는 '삶의 울림'이었습니다. 음악은 영원히 상하지 않는 청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 신령한 신의 숨소리였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말은 침묵 속에서 탄생했지만, 음악은 그 침묵을 채우며 인간이 누구인지,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고요히, 그러나 강렬하게 증언했습니다.



가장 추상적인 예술 형식을 지닌 음악은 인간 실존을 쏙 빼 닮은 초월의 예술이었습니다. 형체도 없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단 한 번 울리고 사라지는 그 운명은 유한한 인간의 삶과 닮아 있었습니다. 회화는 눈에 남고, 시는 종이에 기록되며, 조각은 돌로 형태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음악은 단지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사라졌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가장 명료한 감정을 만났고, 가장 순수한 자아와 조우했습니다. 음악은 실존적이었으며 동시에 초월적이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강을 따라 피어나는 영혼의 순간들이었으며, 존재의 가장 정직한 고백이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고, 노래하고, 울고, 그리고 죽었습니다. 그 생의 여정은 곧 하나의 음악이었으며, 그 음악은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한 번뿐인 생처럼, 음악 또한 그 순간에만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은 가장 인간적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신적인 예술이었습니다.



참된 음악에는 악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음악은 마음을 맑게 하고 영혼을 투명하게 하며 사랑을 되살리는 언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음악은 거짓을 꾸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알아차렸습니다.

베토벤은 "모든 예술 중 음악이 하늘에 가장 가깝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음악이 없었다면 삶은 실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음악은 고통마저 품고 아름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 앞에서 전율했고, 그 순수성 앞에서 모든 것을 여의고 여여한 마음으로 비로소 겸손해졌습니다.

진정한 음악은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았고, 오직 감각과 존재의 떨림으로만 체험되었습니다. 그 모든 감정은 하나의 조화 속에서 고요한 치유로 향했습니다. 음악은 무너짐에서 솟아오르는 재건의 언어였으며, 파괴된 마음에서 피어나는 소망의 불꽃이었습니다.



음악은 단순한 오락이나 기예가 아닌, 인간 도덕성과 우주의 조화를 반영하는 가장 깊은 정신적 수련의 길이었습니다. 음악은 하늘의 조화를 따르고 인간의 덕을 일으키며 세상을 안정시키는 생명과 사랑과 희망의 어머니였습니다.

음악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울림의 다리'였으며, 신 앞에서 인간이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설 때 나오는 '소리 없는 울음'이자 '영혼의 합창'이었습니다. 신비로운 울림 안에서는 하늘과 인간,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만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고유한 멜로디를 지닌 존재였습니다. 심장은 박동으로 박자를 새겼고, 삶은 음표처럼 펼쳐졌으며, 매 순간 우리는 저마다의 음악을 연주하며 살아갔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은 악보 없는 즉흥곡이었으며, 우리의 존재는 하느님의 숨결로 연주되는 살아 있는 교향곡이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태초의 말씀이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울림이 되었고, 그 울림은 생명이 되었으며, 그 생명은 음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즐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인간다움의 깊이를 기억하는 일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신비로운 증거였습니다.

'육화된 로고스', 즉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삶이 사랑의 음악이었고, 그 생애는 찬미가였으며, 그 십자가는 고통의 음계 속에서 터져 나온 구원의 절창이었습니다.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의 증언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존재의 기도'였습니다.

다섯

음악으로 비로소 인간은 인종과 언어와 이념을 초월하여 하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음악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발견했고, 서로를 이해했으며, 하늘과 땅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신비를 체험했습니다.

음악은 존재의 증언이었으며, 사랑의 언어였고, 영원을 향한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의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존재의 증언이며, 하늘과 땅을 잇는 거룩한 다리입니다."*

인간의 실존적구조를
가장 쏙 닮은 예술,

저에게 음악은
눈으로 볼수없는 영혼을
귀로 볼 수 있게 하는
영혼의 몸이였습니다

음악은
하느님의 숨 속에
우리 모두의 생명이 살아 숨쉬는
거룩한 울림

이것이 바로 신수정 선생님을 통해
제가 깨달은
음악의 참된 의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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