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가는 길
황지우 (詩/美學, 한국예술종합학교)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着語 :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네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 두부 장사의 핑경 소리가 요즘은 없어졌다. 타이탄 트럭에 채소를 싣고 온 사람이핸드마이크로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소리를 나는 듣는다. 어디선가 병원에서 또 아이가 하나 태어난 모양이다. 젓소가 제 젓꼭지로 그 아이를 키우리라 너도 이 녹 같은 기다림을 네 삶을 물들게 하리라. (4시집 『게눈 속의 연꽃』(문학과지성사, ’98) 中)
旅程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완도 무선국에서 걸려 온 시외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새벽길을 나선다. 새벽 겨울바다 바람과 雜音과 訃音이 짬뽕이 된 수화기 속에서 하라부지가, 윙잉, 하라부지가 돌아가셨씅께, 윙윙, 느그 미국 성님한테 윙윙, 전화하고, 윙윙, 빨리
택시로 강남터미날까지
고속버스로 광주까지
직행버스로 해남까지
통통배로 全羅南道 莞島郡에 부속된 섬까지
갈수록 길은 점점 左右가 오무라들고 上下가 험했다. 上流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喪家는 잔치집이었다. 일흔 가호 앞뒷 섬사람들이 一當六七의 全食口를 몰고 와 4박 5일 葬을 지냈다. 에미들이 따라온 새끼들에게 입이 찢어지든 말든 한볼테기씩 고깃점을 밀어넣어 주면 아이들은 뭔갈 움켜쥐고 뒤안으로, 게처럼 잽싸게 빠져나간다. 사내들은 천막 밑으로 들어와, 가신 그 양반, 福人이셔 福人, 한마디씩 거들고 앉는다.
부정기적으로 哭을 하고 나온 큰어머니도 이 상 저 상 돌아다니며 이것 놔라 저것 놔라 얼굴에 喜色을 숨기지 못한다. 저노무 영감탱이 빨리 디져부러쓰믄, 그녀는 기쁘다. 뭍으로 나간 일가붙이들이 속속히 들어오고, 목포 작은고모 일금 貳拾萬원, 부산 셋째 작은아버지 參拾萬원, 광주 큰형님 일금 五拾萬원, 서울 선자 누님 일금 壹拾萬 원이 들어오고, 돼지 다섯 마리 잡고, 소주 열 박스를 풀어 놓았으니 큰어머니는 오지다. 한편으로 섬사람들 앞의 生色과 誇示, 베푼다는 생각으로 기뻤고, 다른 한편으로 뭍사람들 앞의 상대적 빈곤과 ‘없이 살았다’는 자기 서러움으로 靈前에서 원껏 울 수 있는 기회가 만족스럽다. 해남 고모와 둘째 작은어머니, 종형수는 입 꾹 다물고 부엌과 구정물통 사이만 오고 간다.
사람이 죽고, 또 울고불고 해도, 한 사람의 죽음을 치어내는 일 역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公同行事였다. 한 구멍의 性器의 共同體에서 빠져 나왔어도, 그러나 제각기 뻗어나간 삶의 ‘꼬락서니’는 천양지간이다. 사촌 팔촌끼리 미국에서 온 아이들과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섬에서 자란 아이들은 뭔가 상호 적대적이다. 어느 놈은 냄새난다고 밥도 먹질 않는다.
이윽고 계꾼들 삼봉 치는 소리도 잦아들고, 마당의 모닥불도 가물거리고, 한차례 음복도 끝나고, 첫물 빠지는 소리만 우울하게 들릴 즈음, 할아버지 죽음보다 더 깊은 수렁의 슬픔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이 분빠이 한다. 슬픈 섬이 슬픈 섬끼리 그믐달 그늘을 늘이며 대열을 짓는다.
목포 고모는 남편이 사우디 나가고 자식들이 선창 불량아이들과 어울려 속썩는다. 부산 작은아버지는 魚物 거간꾼이다. 객지에서 식구도 많고 살기가 팍팍하다. 자꾸 빽이 있어야 한다고, 집안에 판검사 하나쯤 있어야 한다고, 서울서 공부 많이 했으면 뭔가 해야지 하지 않느냐고 한다. 학원 선생인 광주 형님도 과외 금지바람에 쫄딱 망했다. 서울 누님은 보험회사 외판사원이다. 목표 달성액이 1억원이라며 생명보험 하나쯤 들라고 한다. 간호원인 형수를 앞세우고 미국 간 작은 형님은 韓人街에서 페인트商을 한다. 다들 어렵다고 한다. 먹고 살기가 뻑적지근 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뭔가 붙들려고 바둥거리는, 그러나 더 이상 잡히지 않는 안간힘이다. 그러나 안간힘도 힘이다. 중요한 것은 그래도 當身들은 손에 물 안 묻히고 산다는 점이다. 큰어머니가 다시 훌쩍거리고, 둘째 작은아버지는 등을 돌려 앉고, 해남 고모는 역시 말이 없다. 잠시 사람들은 썰물과 민물이 뒤바뀌는 소리를 듣는다. 드는 물살이 해우 발대 사이로 빈 배를 뜨게 한다. 이 섬을 뜨라고 누가 말한다. 타고 나기를 뱃사람으로 태어난 宗孫, 경식 형님이 버럭, 꽥, 소리를 지른다. 이 오살할 놈의 섬을 떠나려도 빚으로 묶여 있다고, 겨울내 쌔빠지게 해우를 만들어도 여름에는 다시 빚 내어 산다고, 목포나 광주사람들의 빚으로 몽땅 꼴아박는다고.
이튿날, 바람 없고 맑고 찬 아침, 한 채의 꽃상여를 짓고 앞바다 솔섬으로 사람들은 건너갔다. 여인들은 물가에 남아 울었다. 생의 부족한 흙으로 할아버지를 묻고 사람들은 돌아갔다.
통통베로
직행버스로
고속버스로
택시로
혹은 비행기로
모두들 일이 밀렸다고, 목포로, 광주로, 부산으로, 혹은 서울로, 엘에이로.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글씨 잘 쓰고 시조 잘 하고, 계림동 후미끼리 장거리에서도 점심드실 땐 나무꾼들과 발길 대청마루에 앉아 툭 두드리며 술 한 잔에 소리 한 번 하고 진지드시던
우리 아버지-----장사한다고 여수로 부산으로 떠난 뒤로 몇 년이고 돌아오지 않던
우리 어머니-----도로 공사판에 나가 자갈 날라 오시고 강냉이가루 밀가루 배급 타오던
광주 계림초등학교 5학년-----밤실 작고개* 김덕령 장군묘 너머 무등산으로 나무하러 갔다가 늦가을부터 겨울까지는 자주 학교도 빠지고, 맨 손으로 빨간 맹감 열매를 따먹는데, 첫 눈발이 한 점 두 점 언 가지에 몰려오던
눈발이 안보이게 펑펑 눈 쏟아지던 어느날 저녁-----우리 아버지 빈손으로 털레털레 돌아오시고, 우리 어머니 울고불고------아버지, 기성회비 안 낸다고 선생이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해라우------잘 했다. 그놈의 썩어 자빠질 놈의 학교 당장 때려 치워 부러라-----나도 밤새 울고불고 하던, 끝없이 눈만 날리던
다음날-----혼날 줄 알면서도 결석계 한 장만 달랑 들고 학교 나갔는데, 담인 선생은 의외로 아무 말 없이 결석계만 한참 들여다보시던, 거기에 도대체 뭐라고 쓰이 있길레, 나는 오래 빈 내 자리에 들어가 앉아도 되었던
우리 아버지------글씨 잘 쓰고 시조 잘 하고, 그러나 우리가 겨울 밤-----아부지, 방바닥이 너무 춥소, 하면, 왜정 때 노무자 징용 끌려가 만주 벌판 맨바닥 얼음 위에 누워 자던 이야기만 하시던, 잔인정이라곤 눈물만큼도 없던, 무지막지하게 독살스럽던, 박정희 대통령과 동갑인 丁乙年生이었던
우리 아버지-----내가 갈 수도 없는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잘했다는 말 한 마디 없으시더니 어느날-----박정희 그 사람 거 글씨 자알 쓴다, 姦하면서, 어딘가 울분이 있어, 자 봐라, 하시면서, 나에게 近代化라고 씌인 동사무소 홍보용 팜플렛을 보여주시던
우리 아버지-----그렇지만 서울서 대학 다니다가 무슨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법률 위반으로 퇴학 맞고 내려왔을 땐-----나 늬 애비 아니고 너는 이제 내 새끼 아니다, 단호히 의절해버린
우리 아버지-----一當百 必勝이라는 대통령 친필비가 서 있던 서부전선 고지에서 내가 보초 서고 있을 때 유언 한 마디, 유산 한 점 없이 돌아가셨던, 여수로 부산으로 떠돌아다니실 때 옮아 온 폐결핵을 가슴에 담고.
* 황지우의 자전적 에세이는 [황지우 문학엘범](웅진닷컴) 참조
황지우, ‘52년 해남 북평면 신월리에서 태어나 광주서중·일고를 다닌 뒤, 서울대(미학)와 서강대·홍익대에서 공부했다.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80년, 문학과지성)로 詩作활동을 시작해,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사, ‘83),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사, ’98),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문학과지성사, ‘98),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 (휴먼앤북스, ’10), 『나는 너다』 (문학과지성사, ‘15)을 펴냈다. 한신대(문예창작과)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극작과, ’97부터) 교수이며, 그곳 연극원장, 총장을 지냈다. 월드컵문화행사,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국립광주아시아문화전당 등 국내외 주요 문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공연_나무 박양희_노래
박양희, 해남에 북평면 흥촌리에서 살고 있다. 80년대 광주의 대학생 노래운동그룹 ‘친구’의 맴버로 활동했고, 이후 인도로 가 타고르가 살았던 아쉬람(공동체마을)에서 8년간 공양주로 살았다. 돌아와서는 [포엠콘서트] 등을 통해 잔잔하게 파장이 멀리 퍼져나가는 노래를 부르며 활동해왔다. 2016년부터 매월 첫 토요일 일지암에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일지풍월_담소] 행사를 이끌고 있다.
'스토리1'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페이스친구 여러분께/ 조광호 (2) | 2025.12.24 |
|---|---|
| 형이 보고 싶어서 ...윤아무개 (1) | 2025.12.23 |
| 금강경, 그 눈부신 지혜/조광호신부 (0) | 2025.12.17 |
| 기다림 속에 머무는/ 조광호신부님 (1) | 2025.12.16 |
| 진정성을 지니고 /조광호신부 (1) |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