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새해를 맞이하여
존경하고 사랑하는
저의 폐이스북 친구
여러분께 한량없는 주님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드리며
삼가
아래의 미흡한 글을 헌정하여 드립니다
성탄 — 아름다운 추억 속에 숨은 놀라운 사건
1.
오늘의 세계는 숨이 차다.
더 빨리, 더 많이. 속도는 미덕이 되었고, 성공과 성취는 신앙이 되었다.
오늘의 세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의 파괴와 끝없는 군비경쟁 속에서, 아찔한 순간 온 세상이 잿더미가 될 수 있는 위험한 발판 위를 굴러가고 있다.
그런데도 성탄이 오면 세상은 잠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거리에는 불빛이 걸리고, 캐럴이 흐르며, "평화"와 "사랑"이라는 말을 마치 오래된 주문처럼 되뇐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는 저마다 아름다운 추억에 잠긴다. 엄동의 한밤, 따스한 촛불의 떨림과 조용한 밤 공기 속에서 누군가의 손을 꼭 잡고 있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른다.
성탄은 이렇게 아름답고 성스러운 분위기로 우리의 추억을 먼저 어루만지지만, 성탄의 진실은 이 따뜻한 추억에 멈추지 않는다.
엄청 길고도 지극히 짧은 한 생애를 살고 나니, 오히려 그 아름다움 속에 숨은 뜻이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성탄은 위로만 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에서 뒤흔드는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2.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다.
이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곱씹을수록 숨이 막힌다.
하느님은 높고 인간은 낮다고, 하느님은 초월이고 인간은 결핍이며, 하느님은 빛이고 인간은 어둠이라고 우리는 배워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탄은 이 모든 질서를 뒤집는다.
하느님은 높이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내려오셨다. 그것도 인간 삶의 한가운데로, 아니, 인간 삶의 가장 낮은 바닥으로 내려오셨다.
성탄의 풍경을 떠올려보라.
궁전도 없고, 제단도 없으며, 환호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냄새나는 마구간, 쉴 곳 없는 어둠 속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한 아기뿐이다.
우리가 간직해 온 성탄의 포근한 이미지 뒤에는 이처럼 낯설고 불편한 장면이 숨겨져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성탄의 의미는 장식이 아니라 사건이 된다.
3.
우리는 흔히 신을 문제를 해결해 주는 존재, 고통을 제거해 주는 힘, 인생의 위기를 단숨에 뒤집는 능력으로 상상한다. 그러나 성탄의 하느님은 전혀 다르다.
그분은 문제를 없애지 않는다. 대신 문제 안으로 들어오신다.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 고통을 몸으로 살아낸다.
그래서 성탄은 이미 십자가를 품고 있다.
성탄과 십자가는 분리된 두 장면이 아니라 하나의 길 위에 놓인 하나의 이야기다.
구유는 십자가의 예고편이며, 마구간의 가난은 골고타의 버림을 미리 비춘다.
아기의 울음은 훗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절규의 씨앗을 품고 있다.
우리가 성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간직할 때, 그 숨은 뜻은 쉽게 사라진다. 그러나 그 추억의 깊이를 더 내려가면, 거기에는 하느님의 단호한 선택이 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는 선택, 그리고 인간이 가는 끝까지 함께 가시겠다는 선택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삶을 멀리서 관찰하지 않으셨다. 배고픔을 모르면서 배고픈 이들을 위로하지 않으셨고, 두려움을 모른 채 용기를 설교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아기로 태어나 울었고, 자라면서 거절당했고, 마침내 가장 잔인한 죽음을 통과하셨다.
그러므로 성탄은 "하느님이 강하시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느님은 함께 아파하신다"는 고백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고백이 끝까지 진실임을 드러내는 자리다.
이 사건 앞에서 우리의 질문도 달라진다. "왜 하느님은 고통을 허락하시는가?"가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서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는가?"라고.
성탄과 십자가는 함께 대답한다.
하느님은 고통을 피해 계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먼저 와 계신다고.
그래서 성탄은 위로이면서 동시에 요구다.
하느님이 이렇게까지 낮아지셨다면,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며 왜 그토록 높아지려만 하는가.
성탄의 하느님은 성공하지 않았다. 대신 사랑에 실패하지 않았다. 그분은 세상을 정복하지 않았다. 대신 세상에 버려진 이들과 자리를 나누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 지쳐 있다. 비교에 상처 입고, 불안에 밀려가며, 사랑받기보다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소모한다. 그런 우리에게 성탄의 성스러운 기억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괜찮다. 높이 오르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너의 가장 약한 자리에서 나는 이미 너와 함께 있다."
4.
성탄은 축제다. 그러나 그 축제의 내면을 엄밀히 들여다보자ㆍ
성탄은 사랑의 하느님께서 취하시는 사랑 의 방향이다.
사랑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인간의 상식을 벗으난 사건들을 통해이루어내시는 지극히 경이로운 역설의 극점에서 이루어 내시는 신비로운 반전의 사건이다.
세상 만물을 주재하시는 하느님이 저 아래로, 더 낮은 곳으로, 상처 입은 인간 곁으로 내려오신 놀라운 사건이다.
예수 성탄은 일찍이 인류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던 절체절명의 순간,
이 사건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오시는 '하느님의 길'이라면, 이 길의 시작이 성탄이고, 그 길 끝에 십자가가 있다.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고, 그 길의 끝에서 하느님은 끝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성탄은 화려한 불빛 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탄은 우리가 삶의 방식 하나를 바꾸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그날처럼, 사랑이 다시 사건이 되는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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