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함께 머무는 사랑
— 갓난아기로 태어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느님
1.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을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설명은 통하지 않고, 이유를 말해도 이해되지 않으며,
문제는 당장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저 옆에 앉아 울음을 함께 견딥니다.
그 순간의 '남아 있음'은 무능이 아니라,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형태입니다.
치매가 찾아온 부모 곁을 지키는 자식의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말을 걸어도 알아보지 못하고,
같은 질문이 끝없이 반복되며,
이제는 나를 기억하지도 못합니다.
돌봄은 점점 더 힘에 부치고,
보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어떤 성과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미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곁에 머뭅니다. 이 사랑은 설명할 수 없고 보상도 없으며
성과로 환산되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사랑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
이 두 장면을 마음에 품고 이제 두 신부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한 사람은 역사 속에 살았고,
한 사람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입니다. 이 두 신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하느님을 증언합니다.
바로 떠나지 않는 신앙,
설명하지 않는 신앙,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역사 속의 신부는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아르스,
그곳에 부임한 비안네 신부입니다.
말이 어눌했고, 학문도 부족했으며,
몸은 늘 병약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무능한 시골 신부"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핑계로
더 나은 본당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당에 남았고, 수많은 시간을
고해소에 남았으며,
사람들의 삶이 무너지는 현장에 언제나 남았습니다.
그의 위대함은 탁월한 설교나 조직력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끝까지 머문 데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사제직은 사랑의 직무입니다."
사랑이란,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가톨릭 역사에 길이 남은
아르스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입니다.
소설 속의 신부는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그려낸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속의 젊은 신부입니다. 그는 더 초라합니다. 병들어 있고,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며,
자기 신앙마저 의심합니다.
그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본당은 변하지 않고,
사람들은 여전히 냉담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실패한 사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신부 역시 떠나지 않습니다. 의미를 설명하지 못해도,
고통의 이유를 알지 못해도,
그는 그 자리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것은 은총이다."
이 말은 모든 것이 잘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이해되었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끝까지 함께 계셨다는
조용한 고백입니다.
이 두 신부는 하느님을 '성공'으로 증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앞세우지 않고,
결과를 내세우지 않으며,
자신의 신앙을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여 준 신앙의 속성과 본질은 하나입니다.
하느님은 떠나지 않으셨고,
그래서 나도 떠나지 않는다.
이것이 두 신부의 공통된 위대함 입니다.
3.
이 '남아 있음'의 사랑은
성탄과 십자가에서 비롯됩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인간을 참 생명으로 이끄시는 구원을 위해 선택하신 놀라운 사건입니다.
하느님은 죄 많은 인간을 떠날 수 있었음에도,
끝내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우리 한가운데로 오시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고쳐 놓은 뒤에 오지 않으셨고,
이해 가능한 존재로 만든 뒤에 찾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아기의 몸으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성탄은 선언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단박에 해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오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그 선택을 끝까지 철회하지 않으신 사건입니다. 배신당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한 채
하느님은 십자가 위에서
마침내 모든 설명을 잃으십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그분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는
능력의 상실이 아니라,
관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느님 사랑의 마지막 고집입니다.
그래서 성탄에서 시작된 '남아 있음'은
십자가에서 완성됩니다.
4.
아이 곁을 떠나지 않는 부모의 사랑,
치매에 걸린 부모 곁을 지키는 자식의 사랑,
그리고 역사와 소설 속 두 시골 신부의 신앙은
모두 같은 자리에서 만납니다.
하느님이 먼저 남아 계셨기 때문에,
그들도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의 위대함은
위로 올라가는 데 있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람 가까이, 아니 사람이 되셨고, 더 낮은 곳으로, 더 아래로 내려오셨습니다.
가장 보잘것없고 연약한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나시어
온갖 수모와 고초를 다 겪으시고,
마침내 인간의 손에 처참히 살해되면서까지
끝까지 함께 머물렀습니다.
사랑의 신비.
모순의 극한에 세워진 골고타의 십자가 .말이 끝나고 생각이 끊어진
자리,그 자리의 시작이 베틀레헴의 마구간 짐승의 밥통,구유에 누으신
하느님,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성탄의 하느님과
십자가의 엠마누엘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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