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검도 겨울 두루미
ㅡ하늘과 땅 사이, 기다림의 새
겨울이 깊어지면 동검도 채플 앞 광활한 갯벌에 두루미 가족이 찾아옵니다. 사람을 지극히 경계하여 가까이 볼 수 없지만, 매서운 추위가 엄습한 오늘 성탄절에도 세 마리가 검은 갯벌을 거닐고 있습니다.
두루미의 몸은 멀리서 보면 눈처럼 희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 흰빛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은빛과 회백이 겹겹이 스며 있고, 목 아래로 흐르는 잿빛 선은 마치 오래된 먹선처럼 고요합니다.
길게 뻗은 다리는 물 위를 걷는 기둥 같고, 접힌 날개는 몸보다 길어 등 뒤로 조용히 흘러내립니다. 그 날개를 펼치면 2미터 가까운 곡선이 공기를 가르며 열리는데, 그 순간조차 요란하지 않습니다.
마치 바람이 스스로 길을 내어주는 듯 두루미는 하늘을 납니다.
부리는 단단하지만 공격적이지 않고, 눈빛은 맑되 날카롭지 않습니다. 모든 생김새가 말하듯
이 기품 있고 아름다운 새는 평생 한 짝과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동검도 갯벌의 두루미는 두 마리가 아니라 늘 세 마리가 관찰됩니다. 엄마 아빠 그리고 딸인가 했더니, 장난기 많은 동네 박영감님은 저쪽 뒤에 있는 놈은 딸이 아니라 첩일 거라고 귀띔합니다.
한참 웃었지만, 평생 한 짝과 살아간다는 저 새에게는 이별도 배신도 없다고 합니다. 그저 함께 먹이를 구하고, 함께 날고, 함께 머물며, 지극정성으로 새끼를 키운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 마리는 어린 새끼가 분명하고, 저 세 마리 두루미는 가족이 분명합니다.
두루미는 더러운 곳을 피해 청정지역에서만 산다고 합니다. 오염된 땅에는 내려앉지 않으니, 두루미가 머무는 곳은 아직 살아있는 땅, 아직 순결한 땅입니다.
"군자는 학처럼 살고, 학처럼 떠난다"는 옛말은 단순한 미학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영성의 언어였습니다. 청정함을 지키는 것,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 타협하지 않는 것. 동검도 갯벌에 두루미가 내려앉는다는 것은 이 땅이 아직 청정한 생명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두루미의 우아한 움직임은 그 자체로 감동입니다. 시끄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고매한 자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품 있는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두루미와 학은 어떻게 다른가 하고 묻는이도 있지만 두루미를 동아시아에서는 학(鶴)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두루미는 자연의 생명이고,
학은 그 생명에 인간이 부여한 영혼의 이름입니다.
두루미는
장수, 고결, 신선, 청정, 영적 존재를 뜻하는 상징이았습니다.
그림, 시, 민화, 도교·불교·유교에서 자주 등장하는 두루미ㆍ학은
청정함을 지키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결함은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완전한 미학의 상징입니다.
두루미는 시끄럽지도,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느리게, 기품 있게 저녁나절 눈부신 석양 속을 날아가는 것을 봅니다. 큰 날갯짓 하나하나가 명상이고, 비상 그 자체가 기도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이 덜 닿은 곳에서만 삽니다. 전쟁이 없는 세계의 상징이고, 탈속의 상징입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영혼의 안내자이며, 조급함도 서두름도 없는 기다림의 새입니다.
그러나 이 조용하고 정제되고 절제된 두루미에게는 놀라운 일탈과 반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두루미의 춤입니다.
두루미의 춤은 본능이면서도 의식(儀式)이고, 몸의 움직임이면서 영혼의 언어입니다.
두루미를 섬세히 관찰한 조류학자들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두루미는 평소 고요하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춤을 시작합니다.
그 시작은 아주 미세합니다.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고 한쪽 다리를 살짝 들며 몸의 균형을 가늠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공중으로 가볍게 솟구칩니다.
놀라울 만큼 높지만 무겁지 않고 부드럽습니다. 마치 중력을 잠시 잊은 듯합니다.
그다음 넓은 날개를 반원처럼 펼치며 공기를 가르지 않고 품습니다. 그 움직임은 공격이 아니라 환대에 가깝습니다. 몸을 천천히 회전시키고 상대를 향해 고개를 숙입니다.
이 동작은 인사이자 존중이며, "나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는 고백입니다.
한 마리가 뛰면 리듬에 맞춰 모두가 응답하듯 따라 뛴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리듬이 생기고 관계가 태어납니다. 이 춤에는 우열도 지배도 없습니다.
오직 호흡만 있습니다.
두루미가 춤을 추는 것을 조류학자들은 단순히
짝짓기만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고합니다.
기쁠 때, 긴장이 풀릴 때, 관계를 확인할 때, 살아 있음이 넘칠 때 그들은 춤춥니다.
그래서 이 춤은 하늘이내린 본능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삶의 기쁨을 나누는 감사의 셰르머니이고,
조물주에게 드리는 피주물의 감사기도가 될 것입니다.
두루미가 고고해 보이는 이유는 자기 과시가 없고, 크지만 위협하지 않으며, 아름답지만 꾸미지 않고, 움직이되 소란스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의 춤은 말합니다. "아름다움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머무는 것이다."
두루미의 춤은 우리에게 함께 존재하는 법,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을 설명하려 들고 관계를 증명하려 애쓰지만, 두루미는 그저 춤을 춥니다. 서로를 바라보면서...
이제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두루미처럼 고요히, 아름답게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기를 고대해 봅니다.
ㅡㅡㅡㅡ
두루미사진은 인터넷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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