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놀라운 물질의 신비/ 조광호신부

주혜1 2025. 12. 31. 00:28

놀라운 물질의 신비

오늘날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스테인드글라스 색유리는 약 2,000~3,000종에 이른다.

그 가운데 가장 귀하고 값비싼 색은 선홍빛 루비 레드(Ruby Red)다.

핏빛처럼 깊고, 석양처럼 뜨거운 이 붉은 빛 앞에서 사람들은 쉽게 말을 잃는다.

그러나 그 빛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놀랍게도 이 루비 레드는 금에서 만들어진다.

금은 물질 가운데 가장 신성을 닮은 존재다. 변하지 않고, 썩지 않으며, 오랜 세월 인간의 사랑과 욕망, 경외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 금이 진정 빛이 되는 순간은, 스스로를 내려놓을 때다.

불 속에서 녹아 유리와 하나가 될 때, 금은 형태를 잃고 자신을 해체하며 빛으로 변한다.

그때 금은 더 이상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하는 빛이 된다.

빛은 붙잡을 때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줄 때 태어난다.

이것은 단순한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오래도록 직감해온 진실이다.

물질은 침묵 속에서 자신이 태어난 감춰진 존재의 신비를 말한다

그런까닭 때문일까
인간은 언제나 물질을 통해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를 감지해 왔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었고, 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돌이 신이어서가 아니라, 그 위에서 하늘과 만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무를 깎아 형상을 만들고, 금과 빛으로 하늘의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물질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돌은 말이 없고, 나무는 침묵하며, 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무엇을 경외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사랑했는지를 조용히 비춘다.

그래서 물질은 신앙의 언어가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고, 붙잡지 않음으로 드러나는 언어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붉은 빛도 그렇다. “나를 보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통과할 뿐이다. 그러나 그 빛이 사람의 얼굴을 스칠 때, 사람은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빛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듣는다. 이것이 물질의 신비다.

금은 가장 완전한 물질이 아니라, 가장 낮아지는 물질이다
사람들은 금을 영원의 상징이라 말한다. 그러나 진실은 다르다.

금은 완전해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함을 내려놓을 때 빛난다.

유리공방의 가마 속, 천 도가 넘는 불꽃 안에서 금은 녹고 흩어지며 자신을 잃는다.
그때 금은 더 이상 금이 아니라, 빛을 산란시키는 미세한 입자가 된다.

붉은 유리는 색이 아니라, 자기 소멸을 통과한 빛의 기억이다.

완전함은 보존에서 오지 않는다.

완전함은 자기 비움에서 시작된다.

금이 금으로 남아 있을 때 그것은 무거운 금속일 뿐이지만, 자신을 내어줄 때 비로소 성스러운 빛이 된다.

우리는 묻게 된다.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니면 놓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신성은 위에 있지 않고, 통과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신을 위에 두었다. 하늘 위, 산 위, 왕좌 위에 두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신앙은 말한다. 신성은 지배하지 않고, 조용히 통과한다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머물지 않는다. 잡히지 않고, 쌓이지도 않는다. 아침에는 벽을 스치고, 정오에는 바닥에 내려앉으며, 저녁에는 제단을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러나 그 빛이 지나간 자리에서 사람은 잠시 빛 안에 놓인다.

신성은 소유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만 경험된다.

금을 쥐고 있을 때 우리는 부자가 되지만, 금이 빛이 되어 우리를 스칠 때 우리는 비로소 성스러움을 안다.

통과하는 것만이 진정 머문다.

하늘을 짊어진 침묵의 빛을 본다
— 신라의 금관
신라의 금관은 화려하지만 위압적이지 않다. 무겁지만 지배하지 않는다. 황금 나뭇가지와 곡옥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다.

그것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하늘 앞에 선 존재의 고백이었다.

길 위에서 사유했고, 이동 속에서 세계를 이해했던 스키티이 문명 속  유리시아 동쪽끝 신라.

초기 신라에서 왕은 지배자가 아니라 중재자였다.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묻는 사람이었다.
“이 백성들을 어찌해야 합니까?”

이런의미에서 신라금관을 쓴 이는 높아지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더 낮아지는 자였다.

그래서 신라의 금은 말이 없다.
그 침묵 속에서는 신성이 머문다.

오늘날 금이 권력과 소유의 상징이 되었을 때, 신라의 금은 여전히 말한다.
금은 지배가 아니라 책임이며, 소유가 아니라 봉헌이라고.
빛은 소유될 때 사라진다.

오늘 우리는 빛을 쉽게 말한다. 성공의 빛, 속도의 빛, 승리의 빛. 그러나 그런 빛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붙잡으려 할수록 사라지기 때문이다.

금이 금고 안에 있을 때 그것은 빛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 속에서 녹아 유리가 될 때,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참된 빛은 자신을 태워 타인을 밝힌다.

촛불처럼, 사라지면서 밝아진다.
존재가 자신을 내어줄 때, 빛은 세상에 머문다.
물질이 남긴 마지막 가르침
금은 말이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쥔다. 명예, 재산, 정체성. 그러나 금은 속삭인다. 네가 사라질 때, 너는 비로소 빛이 된다고.
빛은 소유가 아니라 관계이며, 신성은 권력이 아니라 통과다.
가장 낮아질 때 가장 깊이 빛나고, 가장 많이 내어줄 때 가장 오래 머문다.

스테인드글라스의 붉은 빛은 말한다.
“나는 금이었지만, 금으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여기 있다.”
해가 기울며 빛이 유리를 통과할 때, 그 빛은 우리를 밀어내지 않는다. 조용히 어깨를 스치고, 얼굴을 지나, 벽에 머문다. 그 순간 우리는 안다. 이 빛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과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깨닫는다.

빛은 소유될 때 사라지고, 통과될 때 비로소 존재한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가장 오래된 기도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