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지옥은 어디에? /조광호신부

주혜1 2026. 3. 7. 08:24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ㅡ인간이 물어온 가장 오래 된 질문

1.
오늘 아침 뉴스는
온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점 점더 깊이 빠져들고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참혹한 광경이 뉴스 마다 펼처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끔찍한 전쟁은 그 자체로 지옥이 됩니다.
인류는 아주 오래 전 부터 하나의 질문을 반복해 왔습니다.

지옥은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공포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려 할 때 마다 다시 떠오르는 질문입니다.

중세의 설교자들은 지옥을 불길로 묘사했습니다.
죄인들은 불 속에서 몸부림치고, 얼음 속에서 떨며, 끝없는 고통 속에 갇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학은 그 상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 (Dante Alighieri) 는
서사시 『신곡』(Divine Comedy) 에서 지옥을 거대한 영혼의 지도처럼 그려 냈습니다.

탐욕의 죄인은 진흙 속에서 몸부림치고, 배신의 죄인은 얼음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그 지옥을 문자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인간 존재의 더 깊은 질문을 읽습니다.

지옥은 어떤 장소인가,
아니면 인간 영혼의 어떤 상태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습니다.

지극히 선하신 하느님이
과연 영원한 지옥을 만드셨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신학적 질문입니다.

2. 정의와 자비 사이의 신비

지옥 문제의 중심에는 하나의 역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정의로우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이십니다.

만일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면
어떻게 영원한 지옥이 가능할까요.

그러나 인간에게 자유가 있다면
그 자유는 사랑을 거부할 가능성도 포함합니다.

그래서 신학은 오래전부터 이렇게 말해 왔습니다.
지옥은 하느님의 분노가 아니라
하느님과의 완전한 단절 상태입니다.

사랑의 근원에서 스스로 등을 돌린 영혼, 빛의 근원에서 스스로 멀어진 자유. 그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강요된 형벌이라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고립일지도 모릅니다.

3. 텅 비어 있는 지옥을 희망할 수 있는가

현대 신학은 이 문제를 다시 깊이 성찰했습니다.
스위스 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Hans Urs von Balthasar) 는
놀라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의 책『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희망할 수 있는가』
(Dare We Hope That All Men Be Saved?) 는
신학계에 큰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지옥이 존재한다고 가르치지만 누가 실제로 그곳에 갔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말합니다.
지옥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 지옥이 텅 비어 있기를.

이것은 인간에 대한 낙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입니다.

오늘 가톨릭 교회의 교황인
프란치스코 교황 (Pope Francis) 역시 비슷한 통찰을 강조합니다.

지옥은 하느님이 인간을 던져 넣는 감옥이 아니라 사랑을 끝까지 거부한 인간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인간을 부르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부름을 거부할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하느님의 잔혹함이 아니라
사랑을 거부한 자유의 비극입니다.

4. 인간이 만드는 지옥

자비와 깨달음의 종교, 불교에도 지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고통을 겪은 뒤  다시 태어나고
다시 수행할 기회를 얻습니다.

삶은 순환하고 구원의 길은 다시 열리는패자 부활전이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시간은 다릅니다.

인간의 삶은 단 한 번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영원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지옥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자유의 궁극적 결과입니다.

이 글을 쓰고있는 이 순간에도
채플 앞 삼월 새벽 갯벌은 놀라울 만큼 평화롭습니다.

바다는 조용히 숨을 쉬고
갈대는 바람에 흔들립니다.
멀리 마니산과 초피산이 물안개
침묵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풍경과는 달리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도시는 무섭게 파괴 되고, 삶의 모든 거처가 불타고, 힘없는 여인네와 철없는
아이들이 영문도 모른체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간을 향해 총을 겨누고,
인류는 끊임없이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 빠른 미사일
더 거대한 폭탄
더 정교한 살상 기술.
인류는 끊임없이 계산합니다.
무기 × 무기
전쟁 ÷ 전쟁
두려움 + 두려움
그러나 그 계산의 끝에는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남습니다.죽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 낸 지옥입니다.
지옥은 하느님이 만드신 먼 미래의 불구덩이가 아니라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5. 새로운 시대의 문턱

오늘 인류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문턱 앞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새로운 지성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는 범용 인공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의 시대가
곧 도래합니다.

아주 가까운 미래에, 인간보다 수십 배, 아니 수백 배 더 빠르게 생각하는 지성이 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다시 오래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지능이 커질수록 인간은 더 지혜로워질 것인가.
기술이 강해질수록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인가. 아니면 지능이 커질수록 인간이 만드는 지옥도 더 거대해질 것인가.

기술은 천국을 만들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입니다.

6.
해가 지면 동검도 채플 주변은 천천히 어둠 속으로 잠깁니다.
갯벌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갈대들은 낮은 숨결처럼 서로를 스칩니다.
멀리서 학의 울음이 들리고
하늘에는 별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 고요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진실을 느낍니다.

세상에는 분명 지옥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누구의 지옥도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동검도 채플의 저녁 바다처럼
조용하지만 깊은 희망이
이 세계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입니다.

지옥은 하느님이 파 놓은 불구덩이가 아니라, 인간이 끝내 밀어낸 사랑이 남긴 텅 빈 절망의一 자리이다.

그리고 지옥은
인간이 끝내 거부한 사랑이 남긴 깊고 깊은 공허로 마지막 희망 마저 거절한 잔인한 절망이다.

ㅡㅡㅡㅡㅡㅡㅡ
동검도채플갤러리
주일11시  미사를 위하여 준비된
2층 갤러리의 저 빈 자리를 본다
ㅡ아직도 세상은 저 빈자리 처럼
기다림으로 충만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