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우물가에서
— 사마리아 여인의 갈증과
우리의 갈증
1.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 요한 4,5-42)는 복음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일화는 이천 년 전의 사건이지만 동시에 오늘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복음은 먼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갈증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언젠가 목마름으로 애가 타 본 적이 있으십니까.
배고픔은 참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지만 갈증은 때때로 더 심각합니다.
목마름은 몸의 깊은 곳에서 타오르듯 올라옵니다. 극심한. 갈증은 온몸이 그 사실을 기억합니다. 입술은 마르고 혀는 거칠어지며 사람은 물을 찾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됩니다.
인간의 삶에도 그런 갈증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무엇인가 목마름으로
우리 모두는 행복과 사랑을 찾아 일생을 헤매며 살아 가고있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붙잡으며 살아갑니다. 사랑을 얻기 위해 달려가고, 인정과 명예를 얻기 위해 애쓰며, 돈과 성공을 붙잡으려 노력합니다. 어떤 이는 건강과 성취를 삶의 중심에 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마치 모래 위에 물을 붓듯 삶의 많은 것들이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을 끝내 채워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또 다른 우물을 찾아갑니다.
또 다른 관계와 또 다른 목표와 또 다른 성취를 향해 걸어갑니다. 그러나 갈증은 다시 돌아옵니다.
2.
사마리아 여인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서는 짧게 말합니다. 그녀에게 남편이 다섯 있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한 문장 속에는 길고도 고단한 생애가 스며 있습니다.
그녀는 행복과 사랑을 찾았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었고 삶을 의지할 자리를 찾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결코 녹녹치 않았습니다. 붙잡았던 관계들은 끝내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남은 것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던 갈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오의 태양 아래 우물로 옵니다. 정오는 사막의 태양이 가장 뜨거운 시간입니다.
공기는 말라 있고 땅은 뜨겁습니다. 물이 더욱 간절해지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이 시간에 우물에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시간에 홀로 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어쩌면 그녀의 삶 자체가 이미 그런 시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우물가에 예수께서 앉아 계십니다.
이 장면에는 이미 놀라운 일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는 민족적 갈등과 종교적 긴장이 깊게 얽혀 있던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인들은 그 길을 멀리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길을 피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만든 민족의 경계를 넘어 사마리아로 들어가십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당시 사회에서 랍비가 길에서 낯선 여자와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놓인 사회적 경계도 넘어오십니다. 더 나아가 그녀의 삶에는 도덕적 낙인도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좋게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경계를 넘어오십니다.
민족의 경계,
사회적 경계,
도덕적 경계.
예수께서는 그 모든 경계를 넘어 우물가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물을 좀 다오.”
이 한마디는 단순한 부탁이 아닙니다. 인간이 세운 장벽을 넘어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입니다. 은총의 시작입니다.
3.
대화가 이어지면서 예수께서는 그녀의 삶을 드러내십니다. 남편이 다섯 있었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정체를 밝혀 수모를 겪게하는 정죄가 아닙니다.
그녀의 삶을 정확히 알고 계시는 사랑의 시선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4.14)
이 물은 우물 속 물이 아닙니다.
세상이 줄 수 있는 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샘입니다.
하느님의 생명이 사람 안에서 흐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4.
그 순간 여인의 삶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복음서는 짧게 말합니다.
그녀가 물동이를 우물가에 두고 떠났다고 말입니다.
그 물동이에는 단순한 물만 담겨 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과거와 상처와 사람들의 시선과 끝없는 갈증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을 피해 살던 여인이 사람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갑니다.
숨던 사람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한 일을 모두 아시는 분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제자의 시작입니다.
제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목마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갈증의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입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만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만남 때문에 더 이상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단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목마른 인간이 생명의 샘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지금도'우리 가운데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각자의 우물가에서 살아갑니다. 자기 물동이를 들고 각자의 갈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가 세워 놓은 모든 경계를 넘어 우리 삶의 우물가에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5.
그러므로 이 복음은 단지 옛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초대입니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물동이를 내려놓고 존재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샘을 발견하라는 생명의 놀라운 초대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을 위해 한 가지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도 언젠가 당신 인생의 우물가에서 그분을 만나게 되기를.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당신의 오래된 갈증이 마침내 영원히 쉬게 되기를 삼가 기도드립니다
마침내 당신 존재의 깊은 곳에서
조용히 솟아오르는 생명의 샘을 발견하게 되기를 .
만물이 새 봄맞이 준비하는
생명의 신비 가득한 이 새벽에
간절히 두 손을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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