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이야기

[스크랩]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

주혜1 2007. 2. 14. 07:28



누군가를 설득할 때에 필요한 요소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의 세 가지를 언급했다.

에토스(ethos)는 인격적인 측면으로서 설득하는 사람의 명성, 신뢰감, 호감을 말한다.
이것이 차지하는 비중은 60%라고 한다.
파토스(pathos)는 감정을 자극하는 요소로서 친밀감, 유머, 연민등인데 설득에 미치는
영향력이 30%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로고스(logos)가 있는데 그것은 설득의 논리적
근거이며 실증적인 자료라고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누군가를 설득할 때 인격과 감정이 거의 90%나 사용된다.
즉, 우리가 누구의 말에 따르려면 그 사람의 말(로고스)은 거의 효과가 없고, 그 사람의
평소 됨됨이, 나를 움직이는 감정등을 더 고려한다는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그의 주장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에서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부모가 좋은 훈계를 줄줄이 꿴다고 해서 자식들이 그 말을 듣는게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말(로고스)을 따라서 행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의 행동(에토스)을 모방하며
크기 때문이다.

또한 어느 집단이든지 지도자의 솔선수범없이 공허한 외침만 있다면 그 집단의 구성원들은
결국 그 지도자를 외면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에토스의 힘이다.
에토스는 무언의 외침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과 가르침을 목청껏 외친다고 해도 에토스가 없다면 결국 10%에
매달려 설득하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에토스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말로 가르칠 것이 아니라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말보다 더 큰 울림이 행함이라고 하지 않던가...

에토스를 보여준 뒤에는 파토스를 사용해야 한다.
감정을 움직이는 친밀함이나 부드러운 말투, 진정으로 나누는 아픔등을 말한다.

그러기에 파토스는 상대에게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훌륭한 에토스를 갖춘 다음 상대의 높이에서 같이 웃고 우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설득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아직 설득의 논리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벌써 90% 이겨놓은 게임인 셈이다.

하지만,
나 조차도 어리석게 로고스에 매달린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너무도 좋은 이론, 훌륭한 설계, 멋진 가르침이므로 이것을 따라야 한다...라고 자식에게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보여주는 모델링의 중요함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로고스의 비중을 너무 크게 두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단지 말씀(로고스)만을 주시지 않았나 보다.
친히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에토스였고,
가장 낮은 자의 위치에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심으로 긍휼을 나타내신 파토스의 단계를
거치신 것 아닐까.

하나님의 에토스와 파토스가 있었기에 우린 단지 말씀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고,
보고 만진 것이 된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말씀(로고스)만을 던져주시지 않고 친히 오신 주님을 생각할 때 가장 정확하고 능력있는
멘토링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함은 말보다 더 큰 울림이다'라는 진리를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도 멋진 에토스를 보여
줄 수 있기를 기도한다.

글:클레이
출처 :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
글쓴이 : 김효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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