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박모

주혜1 2007. 4. 26. 16:17
薄暮

김주혜



내 가슴속에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가 입을 열고
나무가 몸을 열어
내 몸의 독소를 빨아먹으면
나는 해독된 채
나무의 입에
나무의 가슴에 수런수런 움을 틔운다

한 열정적인 나무를 내 안에 들여앉히고
나는 벙어리 사랑을 시작한다.
눈멀고 귀먹어도 나는 상관이 없다.
내 가슴은 기쁨의 물결로 언제나 촉촉하니까
온통 부스럼을 앓는 사랑이라도 나는 괜찮다
그 부스럼조차도 꿀처럼 달콤한 정액냄새를 뿜으며
내 눈먼 사랑 앞에 반짝이는 이름 하나로 남아있으니.

나무가 뜨거운 육질의 입김을 내밀던 어느 날
나는 이 버거운 나무를 베기로 한다
내 사랑의 운명은 외로움인데
완강한 열정으로 자리잡은 나무의
마디마디에 내 겨울을 매달고
연초록 숨을 쉬고 싶은 내 갈망을
이제 이슬방울에 묻혀
나는 내 나무를 잃는다

가슴속에 가지를 움트게 하던 그 봄날의 기억만으로
나는 나무로부터 돌아서 아득한 彼岸으로 흘러갈 수밖에
나무가 떠나버린 빈 산에서 이제 나는
관악산의 돌멩이라도 끌어안고
내 사랑을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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