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김주혜
너와 나의 만남은
지구 한 귀퉁이를 슬쩍 건드리는 일이나
내겐 역사의 바람이 머무는 일
날줄과 씨줄이 바뀌고, 천지가 갈라져
고름이 철철 흐르는 일
고이고이 접힌 세월을 펼쳐보면
동부새가 불어 언 땅을 녹이고
바닷물이 바위를 깨부수는 일만큼이나
크고 의미 있는 일
더듬이처럼 두 귀를 세우고
온몸의 신경세포를 쫑긋거려도
더 이상 들려오는 메시지가 없는 길목까지
눈물 지르밟고 돌아오는 일
어떻게 알려야 하나
그 가슴 저리고 훈훈한 한때를
평생 흰옷 입고 입 다문 디킨슨처럼
사랑을 잃고 나는 쓰는 일.
-[본질과 현상] 2007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