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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아트파크에 있는 부르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부르델 [Emile Antoine Bourdelle, 1861.10.30~1929.10.1]
아버지는 고풍(古風)의 가구공(家具工)이었다. 툴루즈미술학교의 장학생이 되고, 1884년에는 파리의 미술학교에 진학하였으나, 그 아카데미슴에 싫증이 나서 퇴학하여 독학으로 미술제작에 힘썼다.
1889년의 살롱 출품작이 A.로댕에게 인정되어, 그의 조수로서 장기간 사제관계를 맺었다(1893∼1908). 그러나 스승인 로댕과는 대조적으로 고전의 재생을 꾀하여, 그리스의 고대조각을 비롯하여 로마, 나아가서는 이집트까지 조각미를 탐구하고, 기념비성(性) 속에 신선한 정취를 담은 독자적인 작풍을 세웠다. 1888년의 첫 베토벤상(像)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에 20개 이상의 베토벤상이 있으며, 1893년에 주문받은 몽토방 위령비는 6년에 걸쳐 완성하였다. 1909년의 《활을 당기는 헤라클레스》는 획기적인 작품이다.
그 밖의 주요작품에 미국의 여성무용가인 I.덩컨(1878∼1927)과 러시아 무용가인 니진스키(1890∼1950)의 무용에서 구상된 샹젤리제 극장의 장식부조(1912), 보즈의 산 속에 놓인 거대작 《알자스의 성모자(聖母子)》(1922),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알베아르 장군 기마상》(1923) 《아메리카 대륙에 인사를 보내는 프랑스》 등이 있다.
로댕, 아나톨 프랑스 등의 초상조각이 많으며, 유채화 ·수채화와 많은 에스키스(esquisse)도 남아 있는데, 대부분은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있던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부르델미술관에 보존 ·전시되어 있다. 그의 특징은 건축적인 구성과 양식에의 복귀였다. 이것은 오랫동안 건축의 지배하에 있던 조각에 근대예술로서의 자율성을 부여한 로댕이 건축과 결별하면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르 베지네에서 사망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폴란드의 전설
제물을 든 성모 (bronze 120x100x250) 1922
웅크린 욕녀
과실 (bronze, 220x104x5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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