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

[스크랩] 한 밤 중의 창세기 외 / 이동호

주혜1 2009. 5. 9. 14:26

 

 

 


한 밤 중의 창세기 / 이동호

 

 

 

방안에는 아내의 배가 노아의 방주처럼 정박해 있다.
아내의 부푼 배가 자꾸만 들썩이는 이유를
방주 속 삼백 예순 다섯 종의
날짐승과 길짐승 때문이라고 해석하면서부터
나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아내는 자꾸만 맹수처럼 코를 골았고
전원을 꺼놓지 않은 TV는 한밤 내 비를 쏟았다.
창 밖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
네온사인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다.
술집의 타락한 형광등은 여전히 정신 못 차리고
소주잔을 기울였다.
불연 지붕 위에 신의 사자처럼 먹구름이 몰려왔다.
모든 지붕 위로 심판의 빗줄기가 그어졌다.
땅 위로 무수한 방언들이 쏟아졌을 때,
아내의 배가 서서히 노 젓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된 아침을 찾아 동승한 비둘기,
아내의 배가 가 닿아야할 아라라트 산은
또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아직도 내겐 한 장의 푸른 감람나무 잎조차 제공되지 않았다.
문득 뱃속에 새 생명을 싣고 잠든 아내의 얼굴이
성경 속 말씀처럼 편안하게 보였다.
잠든 아내의 얼굴에서 감람나무 이파리처럼
맑은 한 장의 웃음을 찾았다.
나는 잠든 아내의 배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아내의 부풀어 오른 방주가 내 품에
포근히 정박해 왔다. 

 

 

 

 

 

 

 

 

 

 

폐가廢家이동호 

 


감나무 가지에 홍시처럼 매달려 있는 그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우체부였다
감나무에는 우표가 무성했으므로 그의 혼은
무사히 하늘로 잘 배달되었으리라
감나무는 그의 육신을 양분으로 더욱 붉었지만
곧 지상으로 힘없이 난무했다
그에 대한 억척의 소문들도 모두 붉어갔다
경찰은 경찰답게 그의 주검에 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으로 귀납 추리했고
마을은 이웃답게 주검에 대한 연민을
혀 밑에 묻었다 담벼락 밖으로
뚝뚝 떨어진 소문일수록 바람에 실려가
산을 붉게 물들였다
철새들이 날아올라 서녘하늘에
단풍잎을 하나 둘 떨어뜨리고 지나갔다
집은 끝내 함구했다
그가 가꾸다만 황폐해진 가을 속으로
참새들이 하나둘 몰려들어 혀를 찼다
바람이 그가 매달려있던 가지를 세차게 흔들어놓았다
그가 신고 다닌 마당의 발자국 속으로
밤새 서리 내리고,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
잡초 속에서 마지막으로 꼼지락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해 겨울
답장처럼 눈이 내렸고
지붕은 상복을 입었다
상주처럼 쓸쓸하게 서 있던 감나무의 가지가
툭 꺾이고, 최후로 그가 벗어둔 장화 속으로
침묵이 고여들었다 마당을 가로질러
그의 발자국이 하나 둘 새로 
돋아났다

 

 

 

 

 

 

 

 

 

 폐가 2 / 이동호                                                 



집이 주인을 따라 죽은 것은 이 년 전이다 집은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묻혔다 오래 전부터 우체부는 오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보낼 목숨이 없었으므로, 감나무 열매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가곤 했다 주인이 사용하다만 연필 끝에서 어둠이 풀려나올 무렵에는 마당에 글자들이 무성하게 자라났지만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낡은 서책 표지 같은 대문이 저절로 펼쳐지곤 했다 대문이 열릴 때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들렸다 거기 적힌 것은 한 장 집의 내력이 全文이었지만, 여치나 귀뚜라미가 읽고 있는 부분은 대체로 비극적이었다 밤이 되면 집들은 불을 끄고 이부자리에 누워 그 이야기를 조용히 듣곤 했다 이따금 밤 매미들이 추임새를 넣기도 했지만, 나무들은 수많은 귀들을 땅에 가져다대고 이야기를 경청할 뿐이었다


지붕 위에 촛불이 켜지곤 했다 그럴 때면 들판에 하얀 지방을 붙여놓고 들고양이들이 축문을 읽고 갔다 새벽 무렵이면 고양이 잔털 같은 것이 이웃집 마당에도 쌓이곤 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군가 다녀가신 것처럼 길 위에 발자국이 찍혀있었다 길을 따라 허공이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아직 불도 켜지 않은 창들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날이 밝자 기와가 와르르 무너졌다 두껍게 깔린 이부자리를 걷어낸 것이다 무너진 아랫목으로 햇빛이 길게 드러누웠고, 햇빛의 품에서 분주하게 꿈틀거리는 것은 작은 벌레들이었다 개미들이 구멍으로 세간을 열심히 물어 날랐고, 거미가 지붕을 새로 만들고 있었으므로 집은 전 주인이 살 때보다 더 견고해지고 있는 중이다


혀 위에 집을 올려놓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집의 내력에 대해 말하는 이 없었다 그날 밤 잠 속으로,

집이 다녀갔으므로,

 

 

 

 

 

 

 

조용한 가족 / 이동호 

 


무상 임대 아파트 8층 복도,
한 덩이 어둠을 치우고 걸어 들어간다.
복도가 골목 같다.
이 골목은 일체의 벗어남을 허용하지 않는다.
복도가 직장이기도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도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이곳에서 사표를 낸다는 것은
極貧의 뜻이고,
담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일층으로라는 의미를 지닌다.
저승은 주로 일층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고층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상시 죽음과 내통하는 셈이다.
작년, 두 사람이 일층으로 순간 이동했다.
올해는 벌써 두 명분의 숟가락이
고층에서 주인을 퍼다버렸다.
몇 사람 더 복도를 서성이고 있었으니
한 두 집 더 빈 공간이 늘어날 것이다.
밤하늘은 눈치가 빠르다.
미리 弔燈을 내걸었다.
사람들은 아파트 속에 조의금처럼 들어앉아 있다.
일부는 여전히 복도를 서성이다가
아무런 말없이 일층을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宗派가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들처럼
따른다.

 

 

 

 

 

 

 

파문 / 이동호


 
강변에 앉아 잔잔한 수면 위에 돌 던지면
교향악처럼 첫 소절을 찍는 파문
둥글게 돌아가는 물의 음반에 귀 기울여 보라

수 만년 소리를 숙성시킨 물의 나이테가
강바닥의 침전물로 돌아가기 앞서
누군가 떠오른다면 그대 또한 옛날에는 강의 일부였다

가슴속 깊은 수심은
오래 전 그대가 강이었던 단 하나의 흔적,
몸 속 물 유전자들이 기억보다 먼저
파문에게 아는 척할 것이다

안테나를 뽑아든 억새들이 수면을 수신한다
강변의 모든 나무 속에서도
음반 돌아가는 소리

잘려나간 나무등걸 위에 그대 몸 올려놓으면
나무의 중심에서부터 크게 한번 출렁였다가
일제히 그대 몸 속까지 번져오는
파문

 

 

 

 

  

 

비와 목탁 / 이동호

 


무작정 때리다보면
지구라는 이 목탁도 언젠가는 텅텅 소리가 날 테지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철썩' 마지막으로
목탁 한번 치겠다는 것이
전혀 어불성설은 아니지
빗방울이 연습삼아 사람들 목 위의
목탁을 먼저 쳐보는 것은
지구를 쳐볼 기회가 단 한번 뿐이라서지
비 오는 장날을 걸어다니다가
머리 위, 비닐에 묵직하게 고인 빗물을
고스란히 맞아본 적 있지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서
'앗'하는 목탁소리가 터져 나오더군
빗방울이 때리면 뭐든지 목탁이 되고 마는 것
그게 삶, 아니겠어
소리를 내기 위해 물렁해지는
저 땅을 좀 봐
새싹이 목젖처럼 올라오는 것. 보여?
멍 자국이라는 듯 쑥쑥 키를 키우는 저것
소리의 씨앗인 빗방울 속에서 자라는
저 푸른 목탁소리 

 

 

 

장마에 갇히다 / 이동호


창가에 서서 비의 창살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든다
방은 감방이었고 나는 수감 중이다
언제부터 빗소리에 취조 당하고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기밀들을 발설하지는 않았는지
비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듯 그치지 않고
더 젖을 것도 없는 나는 창가에 서서 불안하다
빗소리에 젖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는 있는가
호출신호처럼 천둥이 울리면 각오할 수 밖에 없다
남은 것은 전기 의자뿐이라는 듯
하늘은 연신 전원을 올리고 있다
탈출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모두 독방수감중이다
우산 속에 갇힌 사람의 뒷모습과
이역의 대문 앞에서나 처마 밑에서
홀로 발 동동 구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쓸쓸하다
비의 제국주의도 이쯤 되면 폭동이 있을 법한데
잠잠하다 비의 강점기, 비의 탄압은 완벽하기에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창가에 불빛이 아른거린다
불빛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몰래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도 기도하는 모습이 되어
창가에서 타올랐지만
여전히 메시아는 오지 않았다
비는 한층 더 큰 소리로 어디론가
모르스 신호를 타전하고 있었다
창밖에는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고 나는
비의 창살이라도 끊을 것처럼
날카롭게 서 있다

 

 

 

만선 / 이동호

 

 

기차가 닻을 내린다. 어둠이 거칠게 파도치는 레일 너머 불 밝힌
인가가 파닥거린다. 그물을 쳐라. 확성기에서 명령이 떨어진다.
승무원들이 차량 칸칸이 오가고 사람 떼 우왕좌왕 몰린다. 발 디
딜 틈 없이 들어찬 사람들, 몸부림치고 더러는 운명에 순응한 듯
눈을 감는다. 기차의 닻이 올려지고 열 한 냥 기차가 포만감에 헉
헉거린다. 기차는 만선(滿船)이다. 차량 칸칸이 몰린 사람들의 몸
이 꿈틀거린다. 사람들의 몸 속 바다가 웅성거린다. 기차의 옆구
리 속에 끼인 사람들 창 쪽으로 꾸역꾸역 몸 눕힌다. 피곤한 눈빛
들이 창 밖 어둠을 그리워한다. 기차가 정박했다. 역사는 거대한
공동어시장, 출구에서는 경매가 한창이다. 검은색 작업복으로 입
찰(入札)을 거머쥔 역무원의 흡족한 표정너머 소금 끼 묻은 안개
가 몰려든다. 사람들 일렬로 구겨진 대합실 앞에는 비둘기가 갈퀴
를 세운다. 역사의 펄럭이는 깃대가 정박한 기차 옆구리의 비린내
를 닦는다. 사람들을 나눠 가진 가로등의 발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Mr. 밥 / 이동호 

 


밥 씨, 당신이 방금 내린 비행기에서 모락모락 김이 오른다
친부모를 찾아, 형제를 찾아 코리아를 방문한 밥 씨,
당신의 눈에도 적정한 온도로 눈물이 끓고 있다
당신이 苗種이었을 때부터 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소상히 알고 있다
이 땅에서 파종되었지만 당신을 감당할 수 없는
천수답이었던 부모는
파란 눈동자를 지닌 기름진 양부모에게 당신을 옮겨 심었다
그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파란 눈을 가진 여자와 연애하여
당신도 아내도 닮지 않은 두 남매의 아버지로 살아왔지만
밥이 주식이 아닌 나라에서 열매맺기도 전에
미리 '밥'이었던 당신은,
늘 설익은 밥이나 삼층밥이 되어 살았을 것이므로
밥 씨, 끓고 있는 당신 가슴을 열지 않아도
이제 이 땅의 밥공기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당신은 어렴풋이 당신의 성씨가 이 씨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은 '밥' 씨이기 이전에도 밥이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떨어져 있는 내내 부모나 형제에게
당신은 늘 먹어도 씹어도 줄지 않는 고봉밥이었다
밥 씨, 당신은 눈물 가득 웃으며 전동계단을 내려
예정된 행로를 밟아 과거의 논밭으로 돌아가려 한다
당신의 부모가 여전히 천수답이어도
당신의 눈물은 농사짓기에 적당한 온도의 논물이어야 한다
공항 로비에서 나는 당신을 한 공기 다 비우고서야
그릇처럼 내려놓는다  

 

 

  어머니와 아들 / 이동호

 

 

  부엌에서 어머니 수돗물이 되어 흐른다
  설거지를 하는지 거품처럼 톡톡 켜졌다가 터지는 울음소리를 튼다
  한 평생 궂은 일로 맥빠진 눈두덩에 몇 방울의 미지근한 물밑 온도를 맞춘다
  어머니의 손은 늘 젖어있었다
  며느리라도 얻을까하여 늙은 아들 잔주름에 기름진 밭 갈던 눈동자 속
  오늘따라 수돗물 소리 괄괄 흐르고
  아들은 아들대로 골방에 들어앉아 고장난 보일러 소리를 낸다
  어머니는 아들의 얼굴에서 수두자국을 끌어다 밥 짓는다
  아들은 구들장 아래 가는 목 드리우고 얼굴의 곰보 구멍 속 불편한 심기를 부글부글 끓이고 있다
  밥을 짓다 어머니 밥솥이 되었다 속을 하얗게  익혔다
  잘 익어 모락모락 눈물이 오르는 쌀알 같은 가슴을 퍼다 공기에 담고
  아들의 운명 속에 들어앉길 원한다
  아들이 웃는다 웃음 속에 밥알이 떠내려간다
  뽀얀 밥알 속으로 잇몸 스며든다
  어머니 웃는다 배수구를 빠져나가는
  오수처럼

 

 

 

늑대 / 이동호

 

 

총포사 쇼윈도 앞 박제된 늑대를 본다
으르렁거리는 순간을 잘 포착하여
카메라셔터라도 눌렀던 것일까
사진처럼 죽음에 걸려있는 늑대 한 마리
송곳니를 지나던 불빛이 너덜거린다
총신을 헝겊으로 닦고 있는
늙은 남자가 늑대의 주인은 아닐 것이다
야성은 함부로 길들일 수 없는 법
빈틈을 스스로 인식하는 순간
그는 송두리째 목이 뜯겨져 나갈 것이다
적의 목덜미를 공격하는 것은
늑대다운 슬로건이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목이 뻐근했던 것은
늑대의 저 살기殺氣 때문이었을지도
세상의 무수한 총구 앞에서
공격할 적절한 시기를 잡기 위해
죽음 속에 생명을 잠시 은폐시킨 늑대
지나가는 시간이 때가 아니길 바라며
사람들은 꼬리뼈라도 내리고
그 앞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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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발자국화석 / 이동호

 

 

수수 억 년 동안

한 자리에 찍힌 육중한 저 발자국을 보고

그저 발자국 정도로만 말하는 것은

큰 실례다

발자국이라고 하기에는 발자국 주인보다도

이제 진흙조차 단단한 반석이 되어

발자국을 모시고 있다

땅 위의 무수한 존재들이 생멸을 거듭하는 동안

진화의 모든 것을 주관하였다는 듯

지구를 한 켤레 신발로 벗어둔 그의

나머지 발자국들은 지금쯤 쿵쿵 중생대 어디쯤에서

막 뛰어오고 있는 중이다

하늘에 떠 있는 해 또한 그의 숨구멍이다

급하게 몰아쉬는 숨소리처럼 구름 몰려들었다 흩어지고

수수 억 년이란 겨우 한 호흡이라는 듯

발자국을 신은 허공이 거대한 몸집을 드러내고 있다

중생대가 현대 어디쯤 도달해 있는지

산이 저수지를 발자국으로 찍어놓고

내 옆에 웅크리고 있다

 

 

* 

시란 생명의 존재성에 의문을 품고 그 생명의 길을 찾아내기 위하여

행하여 지는 정신적 자위 행위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 정신적 자위 행위가 삶의 진정성을 이끌어 내고 그 진정성을 바탕

으로 하여 새로운 삶의 바탕이 삶 속에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호 시인의"공룡발자국화석"에서는 그러한 사실적 가치에 기준하여

소멸과 생성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이미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공룡의 발자국이 진흙속에서 수수 억년 전

에 존재했던 허공속에서 진행되는 상상의 삶은 현재형으로 살아가고

있다 유적이나 유물은 과거의 가치를 통해 자연과 융화되어 살아 온

시간을 다시 뒤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답을 풀기 위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자연의 변화 과정은 미래를 예측하는 도구다 수수 억년 전의 공룡

화석에서 공룡의 힘보다 그 힘을 진흙속에 가두어 두었던 태양의 뜨거운

힘을 다시 보는 듯 하다

/ 임영석 시인

 

 

 

바지락, 바지락 / 이동호



바다가 바지락바지락 풀어놓은 이야기들
무릎 꿇고 열심히 캐고 있는 아주머니,
그 이야기들 도시로 전해주며 받을 일당 이만 원처럼
머리 위에 갈매기 두 마리 떴습니다
아주머니는 갯펄을 끌고 가는 거북이를 닮았습니다
쪼그려 걷고 난 후 남은 민무늬 발자국마다
작은 바다를 남기셨지만
그 발자국이 못생긴 망둥어나 겁 많은 게들에게는
고래등 같은 집이 된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발자국 속에 들어앉은 하늘도 오늘 참 편안한 모습입니다
꼴뚜기 같은 자식새끼 오징어가 아니면 어떻고
문어가 못되면 어떻습니까
개펄을 남편처럼 여기고 손주 새끼 같은 발자국들
주렁주렁 바닷물에 풀어놓으면 그뿐
아주머니 시집살이 사십 년 한도
밀물 서너 번 지나가면
개펄 위에서 반쯤 지워질 것이 뻔합니다
남편 생각도 요즘 나는 바지락 개수처럼 휴년일 테지만
수평선에 섬처럼 걸터앉았다가 황혼녘 개펄 위에
바지락을 하나하나 박아놓고 가는 해가
바로 아저씨입니다
오늘 저녁 아내가 바지락을 삶고 있습니다
바지락이 들려주는 바다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내가 나를 보며 개펄처럼 포근하게 웃습니다
웃음 속에 바지락처럼 파묻혀 아기가 잠들었습니다
꼴뚜기처럼 못난 남편이지만
저도 한 가정을 끌고 가는 거북이라는 것을
가끔 깨닫습니다 아주머니가 전해준
바지락 덕분에

 

 

 

리모트 컨트롤 / 이동호

 

 

아랫목에 누워 아내가 드라마에 몰입한다

나는 그런 아내를 연속극처럼 바라본다

담벼락 밖으로 감들이 뚝뚝 떨어진다

이 지구가 동그란 리모컨 버튼 같아서

무거운 것들이 땅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은 여름으로, 여름은 늦은 가을로

자꾸만 채널을 바꿔온 것이다

아내와 내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든 것은,

아내가 나를, 내가 아내를,

버튼처럼 꾹꾹 눌러왔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예고편까지 다 보고 나서

아내가 리모컨을 찾는다

그런 아내를 볼 때마다 나는 슬프다

배터리가 나간 리모컨을 아내의 손가락이

신경질적으로 꾹꾹꾹- 눌러대지만,

아내여, 채널이 바뀌는 것은 내 얼굴이다

잠에서 깬 아이를 다시 재우며,

지금은 밤 열한 시이고 나는 배가 고프다

창밖에는 버튼처럼 동그란 달이 떴다

아내의 얼굴 표정이 드라마 같은 날에는,

내 마음이 속 텅 빈 저 보름달 같다

감나무 꼭대기에 올라 나는 저 딱딱한 달을

자꾸만 꾹꾹 눌러대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눌러대도 창밖은 변화가 없어서

반응 없는 보름달이여, 드디어

건전지 갈 때가 된 것이다

 

 

 

세탁기 이동호

 

 

아내가 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려 한다

아내의 완력에 빨래처럼 접히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무소불위한 잔소리의 권능에 못 이겨

끝내 구겨져 세탁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세탁기 속에도 사계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세탁기가 지구처럼 자전한다

몸이 바닥의 회전 날을 축으로 공전하는 동안

내 몸통 속에서 아름답게 꽃이 피고 지고

졸졸 시냇물이 흐르고

물거품이 해조처럼 밀려들 적마다

내 속으로 신호가 밀려와서 자라고

머리에서는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울리곤 했다

내 몸의 각질이 낙엽처럼 내 주변을 떠돌았다

시베리아 벌판을 고사목처럼 걸어다니기도 했다

아내가 원하는 내 부활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젖은 아내의 명상 속을

섬처럼 둥둥 떠다니다가 곧 탈수될 것이다

햇볕 소용돌이치는 어느 베란다에서

말 잘 듣는 강아지풀처럼 뽀송뽀송

잘 건조될 지도 모를 일이다  

 

 

 

 

옹당이 / 이동호

 

 


변소에 앉아 똥을 한 무더기 내려놓으며

앞산을 바라보면, 앞 산 또한

하느님의 똥 무더기는 아닐까 상상하며

푸식푸식 웃던 때 생각난다 고얀 놈

하늘이 한쪽 눈을 찡그리고 내려다보는 모습

두려워 고개 살짝 돌리면

감나무가 이치를 깨달은 듯

나뭇가지마다 켜놓고 있던 붉은 동그라미들

감나무 아래 고인 옹당이가 정안수 같아

쪼그려 앉은 자세로 소원을 빌었었다

소원을 들어줄 것처럼 옹당이 속으로

무수히 뛰어내리던 별빛들, 보며

나도 자라 옹당이가 되어야지

무조건 받아내는 포용력을 배워야지 하다가

혹 저 옹당이가 소우주는 아닐까

우주 또한 작은 옹당이에서 발원한

더 큰 물웅덩이일 것만 같았다

나는 무슨 진리나 깨우친 수도승처럼

볼일 보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터진 홍시라도 되는 듯 내 몸을 빠져나간

똥 무더기에서 폴폴 단내가 난다

볼일을 끝내고 마당에 고이면

내 몸 속으로 뛰어 내리던 숱한 별빛들

나도 밤하늘을 비추고 있는 옹당이였을까

내 속에 우주가 넘칠 듯 고여 있었다

서쪽 산으로 잘 익은 홍시 하나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여명이 구수하게

풍겨올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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