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의 도시, 동로마제국의 황도,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수도 지금 터키의 수도인 이스탄풀의 역사는 그 오래된 시간적 기원만큼이나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그리고 서양과 동양이라는 이색적이고 복잡한 문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그리스도의 성전과 이슬람의 성전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이 도시는 겉으로 들어나는 풍경만큼이나 내재적으로 복잡하고도 미묘한 그 옛날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내 이름은 빨강>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 자신이 밝혀듯이 작가의 작품중에 색깔이 가장 돋보이게 살아있는 작품으로 빨강색과 검정색등 비롯한 다양한 색감이 느껴지는 소설이다. 비잔티움제국을 몰아낸지 150여년이 지난 1591년 술탄 무라트 3세의 제임기간을 역사적 배경으로 전개되는 역사소설이자 추리소설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또 한편으로 당시 이슬람문화의 절정기를 구가했던 세밀화를 다룬 예술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작가는 술탄의 밀명을 받아 은밀하게 진행되는 작업도중 살해된 세밀화가 엘리강스의 죽음을 시발로 이를 둘러싼 또 다른 죽음과 절세미인인 세큐레의 사랑을 얻기 위한 구애자들의 질투, 그리고 당시 유럽으로부터 거세게 불어닥친 문화적 충격을 겪어 나가는 과정을 추리소설의 플롯을 가져와 전제적인 내러티브를 긴장감 있게 끌어가고 있다. 빨강색이라는 색감자체에서 유추되는 정열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왠지 죽음의 전초전을 암시하는듯한 불안한 구도를 덧씌우면서 작품속에서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한다. 특히 동양적인 관점에서 빨강색이 주는 느낌은 서양의 관점과는 사뭇다르다. 스페인 투우에서 보여지는 정열적인 생동감 보다는 핏빛과 죽음을 암시하는 불안하면서도 생명의 근원에 다가가게 하는 신비로움을 동시에 전해준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작품전반에 걸쳐 빨강이라는 색감을 뿌려놓고 있어 마치 살얼음판을 건너는듯한 불안함과 동시에 끝모를 속도감을 주고 있다.
16세기는 유럽에서는 일대 변혁의 시기였다. 중세라는 암흑의 시대를 청산하는 인본주의 르네상스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동안 세상의 모든 관점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의 관점 즉 인간이 아닌 신의 관점이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러한 시작은 예술작품 회화에서 유독 강하게 표현되었다. 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은 신이 중심에 서다 보니 인간의 시각은 불손하고 비종교적인 이단을 상징했던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교뿐만 아니라 이슬람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치 창문을 통해서 세상을 보면 멀리있는 사물은 작고 흐릿하게 보이고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는 극히 작은 진실이 원근법이라는 화풍을 통해서 서서히 들어나면서 세상은 변하게 된다. 당시 이러한 원근법이 중세를 고하고 르네상스라는 시대를 열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특히 이러한 발상자체가 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위험스러운 것이였다. 그러나 인간은 서서히 자신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이러한 시각이 전혀 불경스럽고 이단적이 아니라 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유럽의 이러한 사조와 대조적으로 이슬람세계는 아직도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길 거부했던 시기였다. 이러한 전환기적 시점을 작품의 배경으로 기존화풍을 수호하기 위한 세력과 새로운 화풍을 도입하기 위한 세력의 한판승부는 결국 구세력의 승리로 매듭되지만 이러한 시도가 남긴 여운의 여파에서 이슬람세계 역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된다.
<내 이름은 빨강>의 특색중 하나가 다른 작품과는 다르게 내러티브 화자들의 다양성이다. 주인공 카라와 세큐레, 세밀화가 엘레강스,나비, 황새, 올리브 그리고 말, 개, 빨강, 죽음등의 비인격체등을 통해서 릴레이 게임을 연상시키듯이 한 화자의 이야기를 이어받아 바로 다음 화자가 네러티브를 풀어가는 플롯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사건이 종결되고 먼훗날 세큐레의자식인 오르한을 화자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음을 대단원에서 암시하는 독특한 구성방식을 가지고 있다. 작품 전개상 살인과 그 추적 그리고 신과 인간의 대결, 사랑의 쟁취등 다양한 대립구조를 보여주지만 그 결말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이러한 대립구도를 통해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것 보다 대립적인 입장을 이해시킬려고 하는 의도가 이야기 전반에 묻어 있다. 이는 동서양 양측의 문화적 이질감의 부각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융합할 수 있는방안을 그저 무덤덤하게 다양한 화자들의 시각에 담고 있을 뿐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여성에게 많은 제약과 굴레를 안겨주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이슬람세계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도 제공하고 있다. 여주인공 세큐레를 통해서 수동적인 여성상이 아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이슬람 여성상을 보여준다. 자신의 생각대로 연인을 선택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이끌어가는 세큐레를 통해서 작가는 신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는 인간을 그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의 시각에서 바라본 세상과 그런 세상을 인간의 눈으로 보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보다는 그저 빨강색을 빨강색으로 보고자 했을 뿐이었다. 이는 색감을 떠나서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제 목소리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빨강색에 담겨져 있는 다양한 의미들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거부하고 있다. 아니 그러한 명명 그 자체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전해준다. 빨강은 빨강일 뿐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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