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당老安堂
-김주혜
늙은 거미가 빛과 어둠을 뽑아낸다
빛은 둥치를 타고 내려가 깊이 뿌리박은 흙살을 깨우고
어둠은 어둠을 타고 올라와 찰랑한 실가지를 끌어안는다
화살나무 가지에 내린 겨울 햇살
제 살 찢어 발밑에 툭툭 떨구고
실가지에 앉은 벌새의 무게로
허공은 다시 숨을 쉬고
그 숨결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들
거미는 고요했다
한 발 디딜 자리를 찾아 긴 다리로 무게를 옮기며
한 발 내딛고는 다시 고요했다
내 존재가 촉수에 닿았는지
길게 뻗은 다리를 들어
한 세상 비웃듯 멀리 그물을 던진다
새로 심은 나무와
물에 잠긴 꿈이 만난다
빛과 어둠이 만나고
태고와 신생이 이어진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너와 내가 만나
엇갈린 그물망에 걸려 떨고 있다
과거를 老子의 단 한 줄로 표현하고 있는
운현궁의 겨울 뜰.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사목 (0) | 2012.09.06 |
---|---|
오래 된 흔적 (0) | 2012.06.03 |
수리산 변산바람꽃을 아시나요 (0) | 2012.05.09 |
선문답禪問答 (0) | 2012.01.18 |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0) | 2010.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