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노안당老安堂

주혜1 2010. 12. 22. 18:23

노안당老安堂

 

                         -김주혜

 

늙은 거미가 빛과 어둠을 뽑아낸다

 

빛은 둥치를 타고 내려가 깊이 뿌리박은 흙살을 깨우고

어둠은 어둠을 타고 올라와 찰랑한 실가지를 끌어안는다

 

화살나무 가지에 내린 겨울 햇살

제 살 찢어 발밑에 툭툭 떨구고

실가지에 앉은 벌새의 무게로

허공은 다시 숨을 쉬고

그 숨결의 힘으로 다시 살아나는 시간들

 

거미는 고요했다

한 발 디딜 자리를 찾아 긴 다리로 무게를 옮기며

한 발 내딛고는 다시 고요했다

내 존재가 촉수에 닿았는지

길게 뻗은 다리를 들어

한 세상 비웃듯 멀리 그물을 던진다

 

새로 심은 나무와

물에 잠긴 꿈이 만난다

빛과 어둠이 만나고

태고와 신생이 이어진다

 

결코 만날 수 없는 너와 내가 만나

엇갈린 그물망에 걸려 떨고 있다

 

과거를 老子의 단 한 줄로 표현하고 있는

운현궁의 겨울 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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