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를 아시는지요
가을 여행길, 대보름달이 뜨면 몸이 뜨거워진다고 했더니 남녘 시인이 화들짝 놀라며
매생이 같은 여자란다. 펄펄 끓는 국물에 매생이를 넣으면 퐁퐁퐁 뿜어져 나오던
뜨거운 열기가 펼쳐진단다. 그 냉랭한 자태에 속아 그만 덥석 떠먹다가는 영락없이
혓바닥을 데이고 만다니, 매생이국 같은 여자!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건드리면
뜨거운 열정이 활활 살아나는 여자, 멋지다. 내가 그런 여자라니... 내게 데이고 싶은
사람, 어디?
피정避靜
바람이 앞가슴에 죄처럼 달라붙는 북한산, 발을 디딜 때마다 나무들이 기우뚱했다.
천근처럼 무거운 내 발목을 붙잡고 붉은 병정개미들 엉덩이를 들어올린다. 누군가
바위 끝에 솔방울을 매달고 예수처럼 팔을 벌리고 벼랑 끝으로 내달린다. 나무들
일제히 현기증을 일으키며 어깨를 부여잡고, 산철쭉은 상기된 채 돌아 앉아 몸서리친다.
사람들 무릎 꿇고 동아줄을 내려달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바위틈의 병정개미들은 붉은
흙을 입에 물고 나무뿌리를 끌어 당기는 산 정상.
취醉
와인을 따라보면 안다. 만남이 얼마나 설레는지, 물방울 같은 잔에 은밀한 색으로
떨어지는 매혹을 보면 안다. 입맞춤이 얼마나 달콤한지. 글라스에 찰랑이며 하늘거리는
주평선을 보면 안다. 주고받는 눈길이 얼마나 아득한지. 쟁그랑 부딪쳐 보면 안다.
이름을 불러주는 너의 음성이 얼마나 교교한지. 온몸이 흠뻑 젖어보면 안다. 너와의
사랑이 결코 맨정신이 아니었음을,
연꽃마을 별똥별
그가 보고 싶어 연꽃마을로 달려왔다. 숨은 듯이 참선을 하고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부좌하고 앉은 그의 손가락 끝에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잠자리도 흠칫 몸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별똥별 한 줄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하늘에서 내 안으로 곧장 날아왔다.
동쪽으로 갈까 서쪽에서 잠을 잘까, 이 하늘 저 하늘 떠돌던 별똥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한꺼번에 연꽃마을 내 가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 울음덩이가 불로 타오르고
물보라로 꽃을 피웠다. 내 안에 연꽃 향기가 가득 찼다.
-시집 [연꽃마을 별똥별] 중에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인들의 친필 축하 편지 (0) | 2012.03.26 |
---|---|
[스크랩] 하이디하우스 와인축제와 시낭송의밤/김남권 (0) | 2011.12.29 |
7월 10일, 두 통의 메시지 (0) | 2011.07.11 |
자신( 가치)의 소중함 (0) | 2011.03.26 |
여행에 관한 짧막한 단상들 (0) | 2011.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