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어머니에 관한 단상
김주혜
땀과 습기로 눅눅해진 이부자리를 손질하여 넣어둘 시기다. 여름철엔 부드러운 소재보다 빳빳하게 풀 먹인 광목 이부자리의 까실까실하게 와닿는 살갗의 감촉이 있어야 맛있게 잠을 잘 수 있어 지금까지 나는 광목홑청을 고집하고 있다. 무엇보다 태양에 바싹 말려 갓 갈아 끼운 홑청에서 나는 그 내음이 마치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 앞섶에서 나는 냄새만 같다. 내 가슴 속 한켠에 눈물 고인 채 들어계신 아름다운 두 분!
지금은 돈만 있으면 마음에 드는 예쁘고 실용적인 이부자리를 손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풀도 먹이지 않고, 바느질도 할 필요가 없다는 그 편리성이 오히려 마음에 들지 않아 영, 정이 가지 않는다.
내 기억 속에 이부자리는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의 아름다운 하모니이다. 계절이 바뀌면 연례행사처럼 분주하셨다. 이부자리를 몽땅 내다가 대청마루에 놓고 이불홑청을 뜯을 때도 사용했던 실을 재사용하려고 조심스레 뜯어 한켠에 국수가락처럼 길게 늘어놓은 모습도 재미있었다. 홑청을 뜯어낸 이불은 빨랫줄에 널어 방망이로 탁탁 털어 햇볕을 쏘였다.
애벌빨래를 한 홑청은 반드시 삶아야 했다. 지금은 합성세제가 나와서 삶기에도 편리하지만 그 시절엔 양잿물을 넣고 삶았다. 나는 양잿물 심부름도 많이 했다. 위험한 것이라서 지금은 판매가 금지 되었지만 예전엔 네모난 깡통에 넣고 팔았다. 불투명한 얼음덩이 같이 생겼는데 연기 같은 기체가 일고 있었다. 만지면 뜨거운지 차가운지는 모르나 엄마는 내게 위험성을 철저하게 일러주셔서 손으로는 만져본 적이 없다. 양은그릇을 들고 가서 십 원이나 이십 원어치 달라고 한 것 같다. 가게 아저씨는 집게로 집어 누런 시멘트 종이로 싸주었다.
양잿물을 넣은 물에 홑청을 푹푹 삶은 후 뜨거울 때 빨래방망이로 흠씬 두들겨 빨았다. 물먹은 홑청이 방망이에 철썩철썩 맞으며 물방울을 튕기는 그 소리도 음악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두 분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게 ‘물 튀긴다, 저리가서 놀아’ 하셨으나 그냥 하시는 말씀이란 걸 안다. 아마도 내 모습에 두 분은 더 힘을 얻으셨을 거라고 지금에서야 안다. 나도 내 아이들이 곁에서 나를 지켜보면 힘이 났으니까......!
말끔하게 빨아진 홑청을 두 분이 잡고 서로 반대편으로 뒤틀어 물기를 빼서 햇볕에 널어 꾸덕꾸덕 말린다. 그리곤 다시 걷어 꼭 밥풀로 풀을 먹였다. 왜 아까운 밥으로 하냐고 물어보면 밀가루풀은 풀이 금세 죽는다고 하셨다. 밥을 풀자루에 넣고 주무르면 뽀얀 풀물이 배어나온다. 그 물에 홑청을 담가 골고루 스며들도록 여러 번 치댄 후 접힌 부분이 없도록 일일이 손질을 하셨다. 남은 풀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모시옷 풀먹일 때 쓴다고 그릇에 담아두셨다. 두 분의 일거수일투족 하나하나가 내게는 내훈이며, 사랑이었다. 그 두 분의 기억따라 지금껏 광목 홑청을 고집하지 않나 싶다.
풀이 잘 먹은 홑청을 마당 빨랫줄에 널어 말리는 작업. 햇살 좋은 한낮을 이용하느라 새벽부터 분주하셨던 두 분의 허리가 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햇살 좋은 마당에 휘날리는 이불홑청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그 홑청 사이로 들어가는 것도 즐겼다. 햇살에 비치는 반투명의 그 공간이 왜 그렇게도 아늑했는지. ‘때 묻는다’고 등짝을 맞기도 했지만. 태양에 바짝 달궈지는 하얀 이불홑청 속안은 꿈속의 내 방처럼 색색으로 빛이 났다.
저녁 어스름할 때 잘 마른 홑청을 빨랫줄에서 걷어내면 그 뻣뻣하기가 조금만 힘을 주면 마치 셈배과자처럼 부러질 것만 조심스러웠다. 실제로 만지러 들면 ‘부러진다’ 며 주의를 받기도 했다.
홑청 뜯는 일부터 시작하여 빠는 일, 삶는 일, 널어말려 풀먹이는 일까지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걷어낸 홑청을 다시 이불에 갈아끼우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할머니는 입으로 분무기처럼 물을 ‘푸우 푸우’ 뿜어내며 뻣뻣한 홑청을 순하게 잠재우셨다. 그 기막힌 분무기 솜씨에 반하여 나도 한 번 해 보았으나 영락없이 물만 쏟아내 이불을 흠뻑 적셔놓고 말았다.
잘 잠재운 홑청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마주잡고 이리저리 밀당을 하였다. 엄마의 가슴엔 시집살이의 설움이 가슴에 있었을 터이니 밀고 당길 때 모든 한을 밀어버리고 당기고 하셨을 것이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밀당이 끝난 홑청을 직사각형으로 맵시나게 접어 보자기에 싸서 그 위에 올라가 자근자근 밟았다. 뒷짐을 지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흥얼거리기도 하시는 모습이 재미있게 보여 할머니를 밀쳐내고 올라가 밟아도 보았지만 이내 심심해져서 도로 내려오곤 했다.
그리고, 빨래의 마지막 단계이며 하이라이트인 다듬이질! 다듬이돌에 잘 밟은 홑청을 올려놓고 두 분이 만들어내는 다듬이 방망이 소리는 참으로 청아한 하모니 바로 그 자체였다. 어떤 오케스트라가 그리 아름다운 음을 발할 수 있으랴! 어떤 화가가 그 정겨운 광경을 실감나게 그려낼 수 있으랴. 내 유년의 기억 속 소중한 사랑이여!
기막힌 연주! 피아니시모로, 안단테로, 알레그로로 이루어지는 그 하모니는 베토벤이었다가 브람스였다가 헨델의 메시아처럼 웅장하고도 거룩하기까지 하였다. 엄마는 입으로 ‘쉬쉬쉿~ 쉬이익~~! ’ 하는 리엑션까지 하셨다. 화음이 절정에 달할 때는 천상에까지 들릴 것만 같이 힘찼다. 두 분의 어쩌면 당시 내가 알지 못하는 고부간의 못다한 대화를 방망이로 대신하였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자근자근 두드리다가 곰실곰실 두드리다가 후다닥 도망가듯 요란스럽다가 따다닥 따다닥 다그락 다그락, 체념하고 스러지는......! 그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요즘 아이들에겐 생소한 음이겠지만 내겐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귀한 음이다.
할머니의 방망이 속도를 엄마가 놓치면 이내 음이탈이 되고 만다. 팔힘이 엄마보다 못하실 텐데도 할머니 방망이는 서로 부딪치는 법이 없었으나 엄마는 가끔씩 뚜다닥하고 서로 부딪쳐 리듬을 깨고 만다. 그 때가 쉬는 시간이다. 할머니는 엄마더러 쉬라고 하시며 혼자서 홑청을 열어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접어 몇 번 더 두드리셨다.
이때가 내 차례이다. 엄마의 방망이를 내가 차지하고 할머니더러 함께 화음을 맞춰달라고 조른다. 할머니와 나는 두 분의 화음소리를 기억하고 그 소리에 맞도록 열심히 두드렸으나 결코 그 음은 나오지 않고 내 방망이는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아쉬움에 자꾸 졸라보지만 할머니는 손에 물집 잡힌다고 말리셨다. 잠깐 두들겼을 뿐인데 내 손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말았다.
다듬이질이 끝난 홑청을 이불에 씌우는 마지막 작업.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홑청은 마치 백옥선비처럼, 한 마리 단정학처럼 우아하게 빛이 났다. 이불을 펴놓고 네 귀퉁이를 잘 잡아당겨 감싸고 양방향에서 두 분의 시침질이 시작된다.
이때다. 나는 냉큼 이불 위로 드러누웠다. 풀 먹인 홑청에서 나는 내음과 햇볕에 달군 이불의 향긋한 내음이 어우러진 이불 위는 폭신하면서 다사로웠다. 엄마는 ‘저리 가라’ 고 하셨지만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셨다. 그 미소에 엄마의 꾸지람은 무의미하였다. 시침질이 끝날 무렵에 나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두 분의 이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지금까지 그 모진 시집살이를 잘도 견뎌왔던 것 같다. 내 며느리와 나 사이를 생각하면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버린 세대에 살고 있지만, 광목 이불홑청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러한 엄마와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수도 없이 뜯어 빨아 삶은 홑청이건만 이젠 내 대에서 끝날 작업.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허리도 관절도 예전같지 않아 슬슬 힘에 부쳐 편리한 이부자리로 바꿀까 생각하니 한숨만이 새나온다. 사라져가는 문화까지는 아니더라도 거기에 따른 추억, 그리움마저도 사라지는 것이 아프다. 더구나 내게 딸이 없으니 나를 추억할 자식조차 없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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