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예비신자들에게서 얻는 삶의 기쁨

주혜1 2012. 5. 31. 21:47

 

예비신자들에게서 얻는 삶의 기쁨

 

김주혜

 

예비자 교리교사로서 봉사한 지 어언 10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학교에서 수업하듯이 주어진 교재대로 건조하게 시작한 무모한 봉사였다. 무슨 뱃장으로 예비신자들 앞에 감히 하느님을, 주님을, 성령을 전하려 했는지 죄스러울 따름이다. 솔직히 가슴도 없이 머리로만 전달한 가짜 교리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기쁨을 예비신자들에게서 얻고 있음도 고백한다.

 

입교식날, 예비신자들 가슴에 꽃을 달아주며,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 형성시키는 효율적인 교리교사로서 그들이 영혼의 갈망을 채우고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서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하여 심신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인간은 심리적으로 위기의식과 불안을 느끼게 되고, 절대자를 찾으려는 마음 안에서 안정을 찾아 새로운 인생의 길(道)에 들어서는 예비신자들이 신앙의 기쁨으로 참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나의 임무가 막중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최근 예비신자들의 수가 매년 급격히 줄어들어 지난겨울엔 겨우 7명의 신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올 2월에 입교한 예비신자들의 수가 30명이 넘는다. 더욱 놀랍고 반가운 일은 연령층 또한 매우 젊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5, 60대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이번엔 2,30대가 주류를 이룰 뿐만 아니라 부녀지간, 부부, 약혼자 커플, 연인 커플들이 함께 하는 매우 이색적이고도 신비로운 조합이다.

갈수록 팽배해지는 물질주의적 사고와 인간 경시 현상 등의 사조와 반비례하여 현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빈곤은 상대적으로 더해가고 있는 현상이 이들을 우리 교회로 발길을 돌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예비신자들의 숫자와 젊은 연령층에 기꺼워하시는 신부님과 달리 나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들이 끝까지 결실을 이루도록 붙잡는 일이 내겐 더 중요한 관건이었다. 8개월 동안 교리에 참석해야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우리 성당을 찾았을 때는 그에 부응하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질을 보여주어야만 하고, 교리도 당연히 책임 있는 시간이 되어야 할 내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들이 과연 화창한 봄을 거쳐, 뜨거운 태양의 유혹을 이기며 매주일 오전을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신앙을 위해 비울 수 있을까?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아마도 반 이상 두 달도 못가 중도에 포기하거나 탈락하고 말 것이리라. 그런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 모두 다 영세 받을 그날이 오기까지 나만의 노하우를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자면 지금까지 내가 해온 기존의 구태의연한 신앙 교육으로는 어렵게 교회를 찾아온 이 젊은이들에게 오히려 복음의 생명력을 감소시키고, 교회에 대한 관심마저 멀어지게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니 머리까지 아파왔다. 그래, 내가 신앙의 길을 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솔직하고 친근하게 접근하자. 영악하고 현실적인 젊은이들에게 솔직,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랴!

 

일요일 아침 9시 교리실에 들어가기 전 성당 입구에 모셔져 있는 예수성심상과 성모상 앞에서 잠시 묵상을 한다. 머릿속이 하얗다. 결국, 나는 이렇게 외치며 교리실로 향한다.

“주님, 성모님, 제 귀와 눈과 입을 빌려드릴 터이니 보고, 듣고, 말씀하세요. 저는 그저 도구에 불과합니다.”

알아서 해 주시겠지. 과연, 그랬다. 시작기도를 바치며 교재를 펼치는 순간, 내 눈과 귀와 입은 주님이 되어, 성모님이 되어 준비하지도 않은 생각과 말이 술술술 터져 나왔다. 그 놀라움은 열정이 되어 매주 활활 타오름을 체험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 얼마나 벅찬 사랑인가!

예비신자들의 입교 동기도 다양하다. 자신이 추구한 이상과 현실적인 자아의 차이가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고, 그 차이가 큰 데서 오는 고민을 나름대로 갖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이, 사랑하는 아내의 유언을 따르기 위한 이, 결혼을 앞두고 반려자의 종교를 따르기 위한 이, 군대에 가기 전 부모님의 권유로, 또는 부부 갈등으로 마음의 평화를 위하여........! 등등 외면적으로는 다르나 결국 한 형태의 고통으로 모두 어두운 터널에서 빛의 세계를 갈망하고 있었다.

 

덴마크의 실존적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삶의 수준을 3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심미적, 윤리적, 그리고 그 두 단계에서 매너리즘을 느낄 즈음 마지막으로 종교적인 삶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는 우리 인간은 물질보다, 명예나 지위보다, 하느님 앞에서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 선택해야 할 길이 궁극적인 선택의 삶이고 보면, 이번 예비신자들의 수가 많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하겠다.

영국의 작가 그레엄 그린은 소설[권력과 영광]에서 신이 존재하는 곳은 교회를 믿기보다 의심하는 사람,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구원이 가능한 사람에 의해 존재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인간사회에서 불안을 느끼며 구원을 바라는 예비신자들에게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하여야 그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선택하길 잘 했다고 위로를 받을까?

 

인터넷과 스마트폰 세대들에게 자칫 고루하고 진부한 말, 답답한 교리해설을 나만의 친근한 방법으로 다가갔다. 매주 메시지로 안부를 물으며 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말을 전하며 인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교란 결국 자신을 들여다볼 줄 알고 깨달을 줄 아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올바른 종교인이라면 회개 없이 은총의 열매를 얻을 수 없지 않은가!

특히 내가 영세 받게 된 동기와 신앙생활하면서 받은 은총에 대해서, 교리 중 예비신자가 받은 은총의 사례 등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깊은 관심을 보일 때 제일 보람을 느낀다.

교리는 이제 중반을 넘어섰다. 처음 우려했던 출석률은 아직까지는 기우다. 온갖 꽃들이 활짝 핀 화창한 날이나,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날, 연휴가 겹치는 날, 그리고 메시지를 날리지 못한 주일이면 예비자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며 그들의 신앙심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성모님께, 예수님께 불러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러나 보라! 하나 둘 아무 일 없다는 듯 활짝 웃으며 들어서는 예비신자들을! 그 모습에서 나는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집안의 큰일이 있는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들 참석하였으니....! 이 얼마나 예쁘고 놀라운 일인가!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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