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나의 묵주 이야기

주혜1 2014. 10. 26. 16:11

나의 묵주 이야기

 

김주혜비비안나 (의정부교구 토평동성당)

 

내 손목엔 팔찌묵주가, 왼손 검지엔 반지묵주가 늘 끼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가방마다에도 묵주가 들어있다. 모두 선물로 받은 묵주들이다. 수녀님이 직접 만드신 것을 비롯해서 해외 출장길에 아들 며느리들이 사다주거나, 문우들, 교우들에게서 받은 묵주 등등……. 그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 서랍 속에 그득하다. 묵주더미를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성지에 가서 새로운 묵주를 만날 때면 탐을 낸다. 성지에서 구입한 묵주를 지인에게 선물로 줄 때의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요즘은 묵주의 형태도 날로 발전하여 장신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쁘기까지 하니 선물로 주거나 받으면 무척 기쁘다.

 

내가 묵주를 선물로 하게 된 계기에는 슬픈 기억이 있다. 근 삼십 년 전 일이다. 영세 받은 직후에 한 자매가 하얀 상아로 된 묵주를 내 손에 쥐어주며 레지오 입단을 권유하였다. 그녀가 준 상아 묵주를 손바닥에 받아들었을 때 모양도 예뻤지만 묵주 알갱이들이 몸 부딪치는 사그락 달그락 뽀그락 거리는 그 보드라운 소리가 어쩌면 그리도 귀엽게 들리는지. 기도 올리는 무기(?)로서보다 그냥 손바닥에서 구르는 묵주 알갱이 소리로나 듣다가 서랍 속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불교신자였던 내가 입교하게 된 동기 또한 신비였다. 중학생인 큰아들이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뉘여 놓고 깜빡 잠이 든 꿈속에서 수단을 입으신 신부님을 만나 신부님, 우리 애가 많이 아파요하면서 신부님을 따라간 곳에 한 여인이 있었다. 스님만 부르던 내가 신부님을 부르며 따라간 꿈을 꾼 며칠 후, 나는 두 아들과 함께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 교리를 받고 영세를 받았다.

 

영세 받은 날 밤, 나는 또 한 번 신비한 꿈을 꾸었다. 그동안 다니던 절보다 더 큰 절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헌데 내가 찾아가는 길이 온통 예수님 얼굴이 부조로 새겨진 하얀 길이었다. 꿈에서도 예수님 얼굴을 어떻게 밟고 가지하면서 조심조심 올라간 곳은 절이 아닌 성당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아묵주를 선물해준 그 자매가 하느님 곁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상아묵주를 꺼냈다. 하느님 사업에 그토록 적극적이며 희생적인 사람이 있을까 싶은 그 자매가 젊은 나이에 너무도 쉽게 하느님 곁으로 간 이후에야 나는 레지오에 입단을 하여 그녀를 생각하며 묵주알를 돌렸다. 또한, 예비신자들에게 서랍 속에 잠자는 묵주들을 꺼내 선물로 나눠주며 묵주기도 방법을 일러주기도 하였다.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올리는 시간은 고통과 죽음과 외로움에 혼자 서 있는 나를 달래는 무기가 되곤 한다. 요즘은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가르쳐 주신 다섯 손가락 기도방법으로 묵주기도를 올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1단을, 가르치고 낫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2단을, 통치하는 사람들을 위해 3단을, 약하고 아픈 사람들과 부부들을 위해 4단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5단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

 

 

 

나의 묵주 이야기

 

김주혜비비안나 (의정부교구 토평동성당)

 

내 손목엔 팔찌묵주가, 왼손 검지엔 반지묵주가 늘 끼어져 있다. 뿐만 아니라 가방마다에도 묵주가 들어있다. 모두 선물로 받은 묵주들이다. 수녀님이 직접 만드신 것을 비롯해서 해외 출장길에 아들 며느리들이 사다주거나, 문우들, 교우들에게서 받은 묵주 등등……. 그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 서랍 속에 그득하다. 묵주더미를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고 사랑스럽다. 그럼에도 성지에 가서 새로운 묵주를 만날 때면 탐을 낸다. 성지에서 구입한 묵주를 지인에게 선물로 줄 때의 그 기쁨은 배가 된다. 요즘은 묵주의 형태도 날로 발전하여 장신구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예쁘기까지 하니 선물로 주거나 받으면 무척 기쁘다.

 

불교신자였던 내가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 또한 신비였다. 중학생인 큰아들이 갑자기 쓰러져서 응급실에 뉘여 놓고 깜빡 잠이 든 꿈속에서 수단을 입으신 신부님을 부르며 신부님, 우리 애가 많이 아파요하면서 따라간 곳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스님만 부르던 내가 신부님을 부르며 따라간 꿈을 꾼 며칠 후, 나는 두 아들과 함께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 교리를 받고 영세를 받은 것이었다.

 

내가 묵주를 선물로 하게 된 계기에는 슬픈 기억이 있다. 영세 받은 직후 한 자매가 상아로 된 하얀 묵주를 내 손에 쥐어주며 레지오 입단을 권유하였다. 처음 묵주를 손바닥에 받아들었을 때 모양도 예뻤지만 묵주 알갱이들이 몸 부딪치는 사그락 달그락 뽀그락 거리는 그 보드라운 소리가 어쩌면 그리도 귀엽게 들리는지....기도의 도구라기보다는 그저 예쁜 장신구로서 서랍 속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아묵주를 선물해준 그 자매가 하느님 곁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까마득히 잊고 있던 상아묵주를 꺼냈다. 하느님 사업에 그토록 적극적이며 희생적인 사람이 있을까 싶은 그 자매가 젊은 나이에 너무도 쉽게 하느님 곁으로 간 이후에야 레지오에 입단을 하여 그녀를 위해 묵주기도를 올리면서 기도의 맛을 점차 느끼게 되었다. 또한, 교리교사로 봉사하면서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묵주들은 예비신자들에게 기도방법을 알려주면서 자연히 나눠주게 되는 뿌듯함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묵주는 돌아가신 친정엄마께 물려받은 복숭아 빛깔의 구슬 묵주이다. 개신교 장로님이신 사촌오빠가 이태리 출장길에 엄마를 위해 사 오신 것이라 특별히 아끼셨다. 돌아가시기 전 내게 건네주시던 그 눈빛을 닮은 묵주를 들면 친정어머니의 체온이 전해진다. 나를 위해 흘리신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 묵주알로 변한 것만 같아 죄스러운 마음이다.

 

이처럼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올리는 시간은 고통과 죽음과 외로움에 혼자 서 있는 나를 달래는 무기가 되곤 한다. 요즘은 프란체스코 교황님께서 가르쳐 주신 다섯 손가락 기도방법으로 묵주기도를 올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1단을, 가르치고 낫게 하는 사람들을 위해 2단을, 통치하는 사람들을 위해 3단을, 약하고 아픈 사람들과 부부들을 위해 4단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5단을 바치기로 약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