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박희진선생님 추모시

주혜1 2015. 4. 10. 18:29

모두가 이별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김주혜

 

수연선생님,

만남의 고마움, 그것은 기적이라 하셨나요?

 

1987년 봄 덕수궁 시창작 교실에서

시와 열애에 빠진 한 청년을 만났지요

교단을 무대 삼아 열정적인 몸짓과 우렁찬 음성으로

시를 들려주던 그 강렬하고도 정열적인 모습을 

바탕골 공간시 낭송에서 다시 뵌 이후,

시는,

들려주어야 빛이 난다는 걸 알았지요

 

참 용케도 수연선생님은

누워 있는 시를 일으켜 세워 춤추게 하는 기술을 가지셨어요

기적처럼 수연선생님을 만나

비로소 빛깔을

비로소 소리를

비로소 보는 기술을 배우려 하는 참에

이별이라니요?

이별할 때 먼 곳이 생겨난다고 하셨나요

먼 길을 돌아오시려고요

그 길에서 설마

시와 결혼하신 생이 지겨워

시를 조금씩 밀어내지는 않으시겠죠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하시며

홀연, 흰수염 날리며 헛헛 웃음 띈 모습으로

반짝 나타나시어 소나무 송을 들려주시겠지요

넋 속의 죽음, 죽음 속의 넋

일체의 잡념 없는 그 낏낏한 솔방울 속 둥근 방에서

솔향기에 젖어 도끼자루 썩히시는 건 아니신지요

저희들

시만이 채울 수 있는 선생님의 빈자리에서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먼 길 돌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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