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2017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김주혜 시인 수상

주혜1 2017. 9. 3. 16:28


2017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조남익, 김주혜 시인 수상

문학아카데미(대표: 朴堤千)와 계간 문학과창작이 제정한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심사위원회(고창수, 강우식, 박제천, 김여정)2017년도 수상자로 조남익 시인의 아버지 산2편과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2편을 선정하였다.

 김주혜 시인은 당초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이 선정기준으로 삼아온,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독자적인 개성과 품격을 지켜온 참 시인들이다

심사위원들은 김주혜 시인의 수상작에서는 세밀한 묘사와 분위기 연출을 통해 작품의 전경과 후경의 이중적인 장치를 아우르는 테크닉과 상상력에 주목하였고, 거침없이 시의 매직 포인트를 찾아내는 시인의 신선한 눈매, 깊은 시력, 역동적인 상상력의 전개를 높이 평가하였다.

 

김주혜(金主惠) 시인:

서울 출생, 수도사대(현 세종대) 국문학과 졸. 1990민족과 문학등단.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

 

*역대 수상자: 1회 고창수, 2회 김여정, 3회 양채영, 4회 유경환, 5회 박현령·고정애, 6회 김동호·정호정, 7회 성찬경, 8회 강민·이영춘, 9회 정대구·이보숙, 10회 윤강로·윤문자. 11회 김학철·노혜봉. 12회 이정웅·최금녀. 13회 한기팔·유봉희. 14회 정영숙·장덕천 시인. 15회 하영·김영호 시인.

 

 

*심사평

2017년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은 조남익 시인의 아버지 산2편과 김주혜 시인의 숲속의 헌책방2편이 선정되었다. 조남익 시인과 김주혜 시인은 당초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이 선정기준으로 삼아온,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독자적인 개성과 품격을 지켜온 참 시인들이다

 

김주혜 시인은 1990민족과문학이 공모한 제1회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시단에 등단했으며, 그 이후 곧바로 모지가 폐간되었어도 타고난 품성과 재능으로 서정시의 공감성을 잘 살려오며 의욕적인 활동을 해온 시인이다.

김주혜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지만 이제는 시인지망생의 모범작품으로 자리잡은 등단작 스트레스처럼 처음부터 작품의 성취도가 남다른 시인이다. 이제까지 시인이 펴낸 세 권의 시집, 때때로 산이 되어』 『아버지별』 『연꽃마을 별똥별이 보여주듯 세밀한 묘사와 분위기 연출에 능해서 작품의 전경과 후경의 이중적인 장치를 아우르는 테크닉이 뛰어난 작품들을 생산해 왔다.


수상작 숲속의 헌책방은 자연이 서점이고, 자연의 두두물물이 서적이라는 절정의 상상력으로 하여 설정이 곧바로 시로 개화하는 매직 포인트가 정점이다. 따라서 시인은 망설임없이 실제의 서가를 치우고, 그 자리의 책들은 저절로 흙과 자갈 바닥에 뒹굴고 계곡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책곰팡이냄새를 풍긴다. 양주동, 유창돈, 백철 등의 저서가 풍장을 당하는 것같은 짓눌림과 애잔한 추억이 맞물리지만 시인은 그모든 것을 자연의 본성에 맡긴다. 서적들은 하나하나가 생명체인 화훼의 다른 이름이다. 자연 속에서 방금 새싹으로 돋아나는 책을 찾아내는 시인의 눈매는 얼마나 신선한가. 시력은 깊고 상상력의 전개는 힘이 넘친다.

 

수상하시는 두 분 시인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고창수, 강우식, 박제천(), 김여정

 


*수상소감: 


아직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의 무게가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무거운 상의 무게를 내가 잘 견뎌낼지 겁이 나기도 한다. 치열하게 시를 쓰지도 못했고. 이름에 걸맞는 작품을 생산하지도 못한 것같은데 이 상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참으로 부담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상을 주신다는 그 고마운 말씀에 고사할 면목이 없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누가 있어 이만큼이나 나를 인정해 주랴 싶어 가슴 한가운데 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끼며, 시인의 길로 들어서서 세 권의 시집을 내고 더 못 오를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상을 받기로 욕심을 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조건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대신하여 선택을 내리곤 하였다. 황당한 일, 지겨운 일, 아픈 일들이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며 깊이 잠수하듯 지내던 어느날 선생님께서 위독하시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그 놀라움에 또다시 후회하는 시간이 닥쳐올까 두려워져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90년 가을, 신경림 선생님, 이근배 선생님으로부터 민족과 문학1회 신인상을 받고는 곧 날아오를 것만 같았던 등단의 기쁨도 잠시, 모지(母誌)가 금세 사라져서 마치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그로부터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문학아카데미 식구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기쁨도 아픔도 함께 했으나 늘 불운의 아이콘처럼 도약할 시기마다 위기가 왔으니 운명이지 싶다.

시를 쓰면 쓸수록 내 무력함 때문에 괴로워 차라리 내 단점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한결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서 시 속으로 도피하였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시쓰기가 아니어서 훨씬 자유롭고 좋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곳으로 도피하자. 그때부터는 망설이고 흔들릴 때마다 구름이, 바람이, 꽃들이 말을 걸어오고 대답을 들려주며 위로해 주었다.

의미를 부여하는 일 중에 가장 위로 받는 일이 시쓰기였다. 그거면 됐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리면서 그것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이라는 걸 자각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처럼 내가 시를 쓰는 동안 내 삶은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이 일어나기에 나는 충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었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사물에 숨을 불어넣는 상상력의 열중이 곧 시를 쓰는 힘이 되었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 결핍의 힘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시간을 위해 부족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겠다. 문학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이지는 못하겠지만 흠이 되는 길은 걷지 않겠다. 축하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2017년 칠월, 김주혜

 

 

  

*김주혜 시인 수상작:


숲속의 헌책방 외 2  

 

 

단양군 적성면 골짜기

숲 속의 헌책방에 들어서자

흙과 자갈 바닥에 뒹구는 헌책들

그 사이로 계곡물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책 곰팡이 냄새가 왠지 정겹다

 

청계천변을 누비며 찾아다닌 기억들

밤새워 도란거리던 시간들

모두, 여기서

짓눌리고 멍들고 남루한 채 풍장風葬당하고 있구나

 

양주동의 여요전주麗謠箋注

유창돈의 이조어사전李朝語辭典

백철의 문학개론文學槪論

90년 내 초기 동인지까지

새록새록 묻어나는 반가운 사람들

함성을 지르며 가슴에 꼭 끌어안는다

 

놓쳐버린 내 시간은 어디쯤 묶여 있을까

숱한 비틀림으로 굽은 내 애잔한 추억처럼

숲 속 나무들 사이로 들어오는 비좁은 햇살,

그래도 저 책엔 방금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덜커덩거리는 창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

되살릴 수도 있어야 하고

여행 끝에 만난 다람쥐에게도 사랑을 느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어떤 몸짓으로 꽃은 피며,

어찌하여 달빛은 잎새마다 얼굴을 다는지

그 추억으로 즐거워야 하며 또 잊어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쓸쓸한 시니피앙이 되어야 하고

우연한 순간에 짙은 에로틱에 녹아야 한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떠날 채비를 하는 서쪽하늘,

풀벌레와 돌멩이들,

함께 노래부르고 침묵할 줄 알아야 한다.

 

 

 

 

연잎이 부르는 노래

 

 

햇살이 탱글탱글 구르는 연잎,

그 넉넉하고 아늑한 초록 무늬 속에는

너무 밝은 빛과

너무 깊은 어둠이 빚은 아픔이 있다

 

붉고 흰 정결한 꽃잎 속에는

고즈넉한 휴식의 묘약이 있다

세상을 휘젓고 돌다 온 바람 앞에

조용히 움직이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닿을 수 없는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르는 세레나데

뿌리 속에 꽁꽁 감춘 아픔이거늘

숭숭 구멍 뚫린 상실이거늘

 

여리디 여린 꽃봉오리 속 짧게 머문 교감,

그 가볍지 않은 만남을

사람들은 그리움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