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는 이 섬 시인
김 주 혜
이 섬 시인을 생각하면 맛있는 것이 먹고 싶어진다. 그녀의 몸은 맛으로 똘똘 뭉쳐 있다. 밝고 건강하고 전형적인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이' 같은 모습으로 구수함이 느껴진다. 삶의 고뇌는 찾아볼 수 없는 '맛'있는 여자다. 그러나 '맛'이라는 게 어디 그리 쉽게 우러나는 것인가. '맛'이라는 건 수차례의 과정과 인내와 길고 긴 삭힘, 그리고 정성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고, 뒤섞이고 화합하는 포용력이 필요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알지만 누구도 접하려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늘 말끝에는 집으로 오라고 한다. 와서 며칠 있어도 괜찮으니 오라고 한다. 말 뿐이겠지 하면서도 나는 수차례 차를 몰고 시우들과 그녀의 집이며 화진포며 속초 등등을 찾아다니며 정을 나눴다. 어김없이 이 섬 시인은 구첩반상을 준비하곤 했으니….!
장로님도 얼마나 반겨 주시는지 눈치 코치도 없는 나는 늘 그녀의 집에 가서 그 '맛'을 즐겼다.
'맛'이라는 게 어디 음식 맛 뿐이랴 살맛, 손맛, 죽을맛, 대화할 맛, 사랑할 맛, 미워할 맛……등등 '맛 '은 매력이다. 그리고 원동력이다.
당시 나의 삶은 불확실하고 희망 없는 삶이었다. 그 삶을 그래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내게 이끌어 준 이 섬시인의 '맛'이 내겐 곧, 삶을 살아내게 해주는 그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박승미 전영주 고옥주 이창화 나 그리고 이 섬시인은 [시와 함께]라는 동인에 합류하여 동인지 6집까지 내며 더욱 친밀하게 지낼 수 있었으나 이창화시인이 운명을 달리하고 나도 상황이 어렵게 되자 동인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섬 시인의 시는 '맛'으로도 표현하지만 나는 '사랑'으로 읽는다. '맛'도 '사랑'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어떤 것임을 그녀의 시에서는 환기시킨다. 이 섬 시인의 '사랑'은 예수님께 받은 대로 베푸는 것임을 나는 익히 알고 있다.
삶이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가장 보편적이고 공평한 서비스, 그것이 '사랑' 이 아닐까 한다.
아카데미에 발길이 뜸한 가운데도 나는 간간이 이 섬 시인의 시를 접할 때마다 그녀의 넉넉한 마음이 전해져 늘 보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박제천선생님의 위독한 상태를 듣고 서야 아카데미를 찾은 나는 뒤늦은 후회를 했으니…!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죄스러움에 몇 개 안 되는 시를 묶어 선생님 손으로 낸 시집[파르티타6번]으로 섬 시인과 다시 물꼬를 틀었으며, 박 선생님과는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해,(2023)8월, 박제천 선생님의 타계로 위기를 맞은 아카데미는 시인회를 결성, 양양 숲속시인학교에 참석하여 오랜만에 이 섬 시인을 보자마자,
" 섬이야~~! " 하고 불렀으니….아마도 그녀는 생경스러웠을 터.
허나 나는 누구보다 반갑고 보고 싶었기에 자연스레 터져 나온 부름이었다.
언제 보아도 편안하고, 아무리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 않고,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되는 친구, 이 섬, 그녀가 늘 고맙고 보고 싶다.
그러나 섬이는 변해 있었다. 그 건강하고 활기찼던 섬이는 어딘지 아파보였다. 걸음도 느렸고 행동도 불안했다. 묻지는 않았지만 걱정스러웠다. 음식 이야기를 하니 이제는 못한다고 하며 공허하게 웃었다.
양양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 섬 시인의 상태가 심상 치가 않았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높았다. 서둘러 챙겨온 해열제를 먹이고 겉옷을 벗어 몸을 다습게 했으나 그 상태로 대전까지 내려가게 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듯하여 부군 되시는 장로님에게 섬시인의 상태를 말씀 드리고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재우고 보내드려야 할 것 같다고 허락을 받고서야 섬이를 설득하여 함께 하룻밤을 지냈다.
"섬이야 나 너에게 받은 빚 이제야 갚는다“
“그래 갚았어. ㅎㅎ”
이 섬 시인과 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 후, 10월 어느 좋은날, 우리 몇몇은 이 섬 시인 찬스로 속초 델피노와 경주 콘도로 두 차례 여행을 떠났다. 이 섬 시인의 건강이 염려스러웠으나 의외로 8월 양양 숲속 때보다 훨씬 좋아진 것에 놀라며 양양 때보다 많이 건강해졌다고 하니 웃으며, 장로님(부군)이 아카데미 식구들과 함께 어울리니 좋아졌다면서 언제든 찬스를 활용하라고 하시더란다. 우리는 즐길 일만 남았다고 손뼉을 치며 건강 호전을 환호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일 줄이야!
이 섬 시인은 자기 가족의 밥상 만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면서 계룡산 자락 끝 평평한 곳에 '하늘빛 하늘을 차일로 차려놓고 오고 가는 길손 불러 모아 한판 잔치를 벌이겠다' 는 소명으로, '양념과 간이 잘 밴 맛 나는 세상' 을 위해 '맛난 밥상' 을 차리며 살다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고 훨훨 날아갔다.
이제,그녀의 향기를 소중히 기억하며 훗날 초대장 들고 호들갑스럽게 반가워할 일만 남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이 섬
정말이야
나하고 옷깃을 스쳤든 아니 스쳤든 상관없다
통성명을 한들 안 한들 어떠하랴
사철 청정한 바람이 부는 이곳
계룡산 자락 끝 평평한 곳에 하늘빛 하늘을
끝 간 데 없이 차일로 차려놓고
오고 가는 길손 불러 모아 한판 잔치를 벌이고 싶다
인절미 팥 시루떡 부침개 산적 푸짐하게 장만하여
손님을 맞고 싶다
잔치 집에는 탁상공론이 들끓기 마련이어서
쑥덕쑥덕 뒷북을 친다 해도 시끌시끌 샐쭉거려도
내 알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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