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김주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대치리 한터마을 294번지, 지금은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이 된 곳이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위해 아버지따라 서울로 이사 온 나는 방학 때만 되면 삼촌과 함께 한터마을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할아버지 댁에 가려면 동대문에서 전차를 타고 뚝섬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했다. 지금은 다리가 놓였으나 당시엔 뱃사공이 노젓는 나룻배를 타거나 동력으로 움직이는 통통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노를 젓는 뱃사공의 멋진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으며, 요금을 조금 더 내고 통통배를 타고 쉽게 건너 봉은사 경내를 구경을 하며 가는 재미도 있었다. 할아버지 댁까지 걸어가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겨울방학 때는 날씨가 추워서 한강물이 얼어 배가 다니지 못했다. 꽁꽁 언 한강을 걸어서 가는 재미는 엄청났다. 삼촌 발자국을 따라가야 했다. 단단히 언 곳을 밟아야 한다면서 삼촌은 주의를 주셨다. 나는 언 강물 위를 미끄러지며 강물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며 한껏 들떴다. 얼음 밑으로 고기떼가 지나가는 모습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며 갈 생각을 안 하니 삼촌은 나를 번쩍 들어 안고 건넌 기억도 있다. 그 강물 속에서 자라도 봤다. 내가 거북이라고 소리를 지르니 삼촌이 자라라고 알려주셨다. 내가 한강에 대해 특별히 친근하게 여기는 이유가 그런저런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한강과 같은 이름의 한 강 작가가 노벨상을 타서 온 국민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연일 한 강 작가의 이야기와 그녀의 작품이 순식간에 품절되었다는 뉴스로 연일 축제 분위기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 벌어져 넋이 나갈 정도다. 우리나라가 노벨문학상을, 그것도 젊은 여성이 언어의 장벽을 뚫고 받게 되었다니...자다가도 기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한 강이라는 이름도 반갑다. 한강은 바라다만 봐도 친근하고 위안이 되었던 나로서는 한 강 작가를 흐르는 한강과 결합하여 생각하며 한승원작가의 작명에 박수를 친다. 처음엔 필명이겠지 하였는데 이번에 본명이라는 것도 알고 더욱 친근감이 생겼다.
한강, 말없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우리 역사의 모든 것을 물속에 감추고 아파하며 푸르게 흐르고 힘들면 붉게 물들었으니 그녀가 노벨상을 받은 '소년이 온다' 속 내용은 당연한 설정이라고 하겠다. 누군가 그들을 위로하고 대신해 줄 가슴이 필요했던 상처를 어루만진 아름다운 작품이 되어 더욱 반갑고 반가웠다.
" 당신의 장례식을 치루지 못하여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작가다운 아름다운 구절구절은 읽는 이의 가슴을 후벼파는 마력을 지녔다. 저음의 느린 음색으로 가늘게 뜬 눈으로 연약하디 연약한 젊은 여인네가 어쩌면 그리도 시원스런 칼날을 드리대고 호령호령하는지…! 물리적인 힘이 아닌 자연의 힘으로 이렇듯 날카로운 지적이 있을까 솜털처럼 부드러운 위로의 손길이 있을까!
자식을 남편을 아내를 어버이를 눈앞에서 멀쩡히 잃었으니 그동안 살았어도 산 것이 아니었을 희생자들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한 일을 한강 작가는 작품으로 해낸 것이다.
내 고향 앞을 지키며 흐르던 한강을 뷰로 삼아 근처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매연을 내뿜는 차들이 쌩쌩 달리면서 나는 고향을 잃었다. 봉은사의 고즈넉한 자태도 시끄럽고, 강을 건너면 코스모스와 강아지풀이 무성한 꼬브랑길 옆으로 수박밭, 참외밭, 보라색 가신 언니의 도라지 꽃들과 눈맞춤하며 걷던 길은 물질만능 시대에 사라지고 없다. 고향이 사라진 나는 한 강 작가의 작품을 몸서리치며, 분노와 함께 반갑게 읽으며 그들의 고통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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