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수상소감]
김주혜
[시인들이 뽑는 시인 상]이 주는 무게를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 이 무거운 상의 무게를 내가 잘 견뎌낼지 겁이나기도 한다. 좀더 젊었을 때 받았더라면 혹 설레고 자랑스럽고 감동적이었을 터인데 지금이야 내 인생에 있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그런 시기는 아니지 않나 싶다. 치열하게 시를 쓰지도 않으면서 이름에 걸맞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되는지 참으로 부담스럽기만 하다.
박선생님께서 늦었지만 상을 주신다는 그 고마운 말씀에 고사할 면목이 없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누가 있어 이만큼이나 나를 인정해 주랴 싶어 가슴 한가운데 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끼며, 시인의 길로 들어서서 세 권의 시집을 내고 더 못 오를 순간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상을 받기로 욕심을 냈다.
돌아보면, 내 삶의 조건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대신하여 선택을 내리곤 하였다. 황당한 일, 지겨운 일, 아픈 일들이 주기적으로 일어났다.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며 깊이 잠수하듯 지내던 어느날 박선생님의 위독하시다는 메시지를 받고는 그 놀라움에 또다시 후회하는 시간이 닥쳐올까 두려워져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90년 가을, 신경림선생님, 이근배선생님으로부터 [민족과 문학] 제 1회 신인상을 받고는 곧 날아오를 것만 같았던 등단의 기쁨도 잠시, 母誌가 금세 사라지고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그때 의지할 곳 없는 나는 아카데미 식구들에게서 위로를 받고 기쁨도 아픔도 함께 했으나 늘 불운의 아이콘처럼 도약할 시기마다 위기가 왔으니 운명이지 싶다.
시를 쓰면 쓸수록 내 무력함 때문에 괴로워 차라리 내 단점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한결 쉬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며 혼자서 시 속으로 도피하였다, 누군가에 보이기 위한 시쓰기가 아니라 훨씬 자유로워 좋았다. 단어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곳으로의 도피는 망설이고 흔들릴 때마다 구름이, 바람이, 꽃들이 말을 걸어오고 대답을 들려주며 위로해 주었다.
의미를 부여하는 일 중에 가장 위로 받는 일이 시쓰기였다. 그거면 됐다. 시지프스가 바위를 굴리면서 그것을 무의미하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일이라는 걸 자각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처럼 내가 시를 쓰는 동안 내 삶은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이 일어나기에 나는 충분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일이었다. 무생물이든 생물이든 보이든 보이지 않든 사물에 숨을 불어넣는 아름다운 반항이 곧 시를 쓰는 힘이 되었다.
'많은 시 또한 티끌이다' 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처럼 시인이 많은 나라도 없는데 일부 시인들이 쓰는 시가 어려워서 읽을 수가 없을 때도 많다. 내 머리의 용량이 부족한 것일지 시대가 차원을 달리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서도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
상은 받아서 뭐하나 했는데 이제 보니 기분 좋은 인정의 지표는 되지 않나 싶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그 결핍의 힘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시간을 위해 부족한 상상력을 펼쳐 보이겠다. 문학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이지는 못하겠지만 흠이 되는 길은 걷지 않겠다. 축하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 적당한 사진이 별로 없네요. 아래 사진 중에 박선생님께서 선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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