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어린 왕자 바람은 그림쟁이다. 투명한 그림쟁이다. 보려고 할수록 꽁꽁 숨어 버리는 그의 그림은 눈을 감으면 확실해진다. 바람이 가리키는 대로 나무는 이파리가 되고 꽃은 나비가 된다. 하늘로 올라가면 사자가 되고 물 속에 가라앉으면 독수리 다리를 가진 물고기가 된다. 이것저것 섞어놓고 희희낙락 즐기는 바람의 그림을 보면 서늘해진다. 으스스해진다. 오늘 아침, 바람은 나를 그리겠다고 했다. 옷을 챙겨 입은 나를 그리면서 그는 가슴속의 뼈를 그리고 있었다. 뼈 속의 간, 허파, 그리고 심장을 그리려고 할 때 나는 서둘러 바람 앞을 도망쳤다 바람은 내 안에 숨겨 둔 그 사내를 그리려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