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가벼운 산책길

주혜1 2005. 6. 1. 09:46
가벼운 산책길

-故 이창화시인에게



이제 널 놓아줄게
너를 둘러싼 사각의 벽,
굳게 닫힌 문
혈관을 들쑤셔대던 바늘 끝에서
이제 널 놓여나게 해줄게
참기 힘든 외로움의 끝에서도 놔줄게
네가 끝내 놓지 못한 시어들의 그물도 거두어줄게
너는
수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는
예수님의 손에서 낚시의 찌를 얻으려 했고
外島, 천국의 계단에서는
삼십 년을 더 살 에너지를 채워 넣었다고 하더니
너 혼자 자유인이 되어 거듭나러 가니?
연두가 좋다며, 투명함이 좋다며
너만 아는 새로운 세계의 열매를 맛보려고
시와 함께 보낸 그 모든 애착과 열망, 바람들에
빗장을 걸고
전생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려 하는 이 참에
하필 혼을 떼어놓을 게 뭐냐?
네 말대로 가벼운 산책길이라도 오르는 줄 아는 게냐?
그래, 그게 가볍다면 가거라
그리 오랜 항해는 아니었다마는
네가 버거워할 여행이었다면
미련일랑 한쪽으로 비껴놓고
얼룩이 묻은 옷소매랑 벗어버리고
초조해하지도 말고
속삭이듯이 떠나렴.
너를 위해 마련해 놓은 하늘의 정원엔
지금쯤 장미꽃 송이송이 만발해 있을 거네.

이 시는 얼마전 함께 활동하던 동인의 타계를 슬퍼하면서 그려본 시입니다.
오늘, 한 수녀님의 주검 앞에서 죽음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생에 그리도 아름다운 주검이 있을까 하는 느낌은
저에게 죽음이 반드시 슬프거나 외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늘 하루 하루를 정리하면서 사셨던 그 분의 모습은 불의를 당한 참혹한 모습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으며,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슬프지 않고 기뻤습니다.
황혼이 아름다운 것처럼....!
하여, 우리의 황혼도 그처럼 아름다워지려면, 욕심없는 삶, 봉사하는 삶,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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