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아버지는 늘 그녀와 함께 있었다.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서 자연적인 그녀의 얼굴에 점령되어 아버지 자신도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다. 내 어머니는 비처럼 밤을 향해 꽂혀 그 공허함을 달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아버지가 보기 좋았다. 그럴 때 아버지는 낯선 사람 같았으나 그 얼굴에선 산을 볼 수 있었고, 바다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결코 험하지 않은 산이었고, 풍랑 없는 바다였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는지……. 그녀의 가는 그물 사이에 끼어 있던 어머니는 어느 날 아버지 방안 가득 쌓인 목각인형을 모두 치워 버렸다. 목각인형이 한없이 어깨를 들먹이며 떠난 후 아버지는 늘 석양에 들어오셨다. 아버지의 산과 바다는 허물어지고 말라붙기 시작했다. 야수적인 도시의 발톱은 아버지를 이리 밀고 저리 밀며 거대한 급류 속에 밀어 넣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소리를 뿌려야 할 그 순간,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에 의해 감추어진 아버지의 마지막 언어를 나는 아버지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얼굴 전면에서 흘러나오는 아우성으로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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