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아버지별.12 -느티나무

주혜1 2006. 11. 24. 15:02
 
아버지별.12
         - 느티나무

 

1.
물보다 느린 속도로 마음을 늦추고 개울목을 지난다.
지나면서 강물도 보고 강물의 반짝이는 웃음도 보고,
나루터가 있었음직한 검은 돌무더기의 상처도 본다. 잘
생긴 느티나무 가지 끝에 걸린 구름 조각도 보고, 까치
동우리도 본다. 그리고 그 동우리의 기다림과 이별도
본다.


2
혈색 좋은 흙의 숨통을 막고, 그 위를 쌩쌩 달리기
시작하면서 공연히 나까지 바빠졌다. 부드럽고 다정한
이 흙에서 손등이 터지도록 공기놀이를 하던 때가 언젠
가. 별빛, 달빛, 눈도 비도 모두 먼지 낀 눈물로 내리
는 칼끝 같은 세상. 우리들 가슴에도 누군가 도로포장
을 하고 지나간다.


3
춥다. 세월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 눈에 익은 초가하
나 날 기다려 주었으면, 쇠죽 끊이다 말고 낫으로 참외
깎아 주시던 할아버지, 저고리 앞섶에서 나는 잎담배
냄새가 그립다. 이 개울목을 지키는 느티나무는 아직은
판소리 하나쯤은 기억하고 있는지 가지를 늘어뜨리고
흐느적거리고 있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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