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별. 14
- 굴뚝새
초하루 보름이면 할머니는 정한수 떠놓고 치성을 드
리셨습니다. 가족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고하는 자근
자근한 할머니 음성과 사악사악 손바닥 비비는 소리가
장독대에 햇살처럼 쩔어 있을 때 나는 눈을 떳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들, 그저‥‥‥ 나
뭇잎에 꽃이 피듯, 그저‥‥‥ 용서해 주시고, 그저‥‥‥
(굽신굽신) 고부라진 할머니 등 너머로 모든 생물이 이
름을 달 무렵이면 영락없이 굴뚝새가 울었습니다. 숨
소리가 늘 가빳던 내 가슴을 쓸어 주시던 할머니 손은 약
손이었습니다. 동지달 스무하루, 그 날은 낮게 울던 굴
뚝새가 요란하게 나를 깨웠습니다. 장독대는 온통 하얀
상여꽃으로 덮여 있었고, 할머니는 그 꽃 속으로 반쯤
들어가 계셨습니다. 숨이 막혀버린 나는 고목껍질 같은
할머니 손을 붙들고, 할머니 손은 약손 할머니 손은 약
소느 하며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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