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가 내전인가?
<평화로운 글들이 올라오는 싸이트에 이런 글이 어울리지 않겠지만.>
철없던 개구쟁이시절, 어른들이 우왕좌왕 당황하면서 동란이 터졌대! 유교사변이 일어났대! 큰일 났어, 빨갱이들이 쳐들어온대. 얼른 피난가야 할 텐데........하시던 기억이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유교가 전쟁을 일으켰나? 그러면 불교와 예수쟁이들과 싸우는 걸까?
그때부터 육이오는 남침, 사변, 동란이라는 명사를 동반하는 고유명사로 나의 뇌리에 판 박음 했다.
우리가 인민군, 괴뢰군이라 부르던 저들은 민족 해방군이라 자처했고 남조선을 해방시키려는 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항상 남한의 북침이었다고 억지를 쓰지만 몇 백만의 동족을 학살하면서 남한을 해방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소련, 중국, 그리고 북한, 세 나라가 합작한 기습 전쟁이었다는 것이 기밀 해제된 저들의 문서에서 명확히 밝혀졌는데도 말이다.
정말 사실을 호도하고 싶다면 삶의 본질을 알고 싶어 고뇌하던 남한의 불쌍한, 몇 백만의 중생을 四苦의 苦海에서 건져내어 열반<죽음>에 들게 하고 싶은 자비심이 일으킨 전쟁이었다고 개똥철학 같은 억지를 부린다면 또 모를까...........요즈음 같은 살아가기 역겨운 세상에서는 꽤 설득력 있겠다.
얼마 전부터 육이오사변, 혹은 동란이라는 표현이 언론매체에서 슬그머니 없어지면서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 국방대학원에서 수강중인 고급 공무원이 옆에 있기에 사변에서 전쟁으로 바뀐 연유를 알아보라 했더니 무어라 잔뜩 설명한 인쇄물을 가져다주는데 아무리 읽어도 내 머리로는 요령부득이었다.
요지는 국가와 민족의 체면에 관련된 표현방식의 차이라고 한 것 같았는데............
너무 답답해서 국어사전을 뒤졌다.
사변 事變: 선전포고도 없이 무력을 쓰는 일.
동란 動亂: 폭동 반란. 전쟁 등으로 나라가 몹시 어지러워지는 일.
전쟁 戰爭: 국가와 국가사이의 무력에 의한 투쟁.
내전 內戰: 나라 안에서 끼리끼리 서로 싸움.
civil war: 內亂, 內戰. 예: 南北戰爭.
거두절미하면 모두 무력을 이용한 힘겨루기, 사람 죽이기다.
단지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났는지의 차이가 있을 뿐.
얼마 전 맥아더장군은 북한이 민족통일을 하기위해 일으킨 민족해방전쟁을 방해한 장본인이니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며 날뛰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의 주장이 바로 육이오는 내전이었다. 민족끼리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성업에 유엔이 찬 물을 끼얹고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치른 미국이 전쟁 광 맥아더를 내세워 우리민족의 성스러운 통일작업을 방해했다는 주장을 내 세워 우리를 아연실색케 한 것.
전쟁이나 내전은 서로 상대방과 현격한 시각의 차이를 보일 때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취하는 마지막 수단이다. 둘 다 선전포고, 싸워야겠다는 의사표시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한 후 벌어지는 무력충돌이다.
반면, 사변이나 동란은 불시에 기습하는 일방적 무력행사로 야기되는 사태를 일컫는다.
1950년 6월25일. 그날부터 육이오동란, 육이오사변으로 불리던 불행한 사건이 어떤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슬그머니 한국전쟁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내전으로 승격(?)했다.
총칼로 동족을 서로 잔인하게 죽였던 사건에 이름 좀 바뀌었다 해서 뭐가 대수냐? 우리 민족끼리 싸운 것이니 정확하게 말하면 civil war, 내전이 맞지 않느냐는 현란한 입놀림. 그렇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육이오를 내전으로 규정하면 유엔은 한국의 통일을 방해한 세계기구가 되고 유엔의 도움으로 태어난 한국은 사생아로 전락하고 만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북한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 된다.
얼마 전 날뛰던 어떤 철없는 교수의 주장처럼 민족통일의 성업을 눈앞에 둔 성전이 유엔과 미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했고 결과적으로 통일염원이 무산되었다는 주장과 일치하는 발언이 대통령 입에서 나온 것이다.
육이오사변은 북한, 중국 그리고 소련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오랜 기간에 걸친 철저한 사전준비로 일어난 기습남침이었기에 괴뢰군은 우리 국군을 초전에 궤멸했고 뒤늦게 뛰어든 유엔의 참전 16개국도 처음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자유를 지키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뿌린 피에 힘입어 우리는 오늘의 번영을 누리고 북한은 아직도 비참한 인권상황에서 핵무기타령으로 그 때를 다시 꿈꾸며 세상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엊그제 있은 대통령의 내전발언은 북한의 전쟁책임을 은폐해주고 우리를 공범자로 끌어들이는 잘못을 범하는 것 같다. 동시에 유엔의 도움을 오히려 문제 삼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들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그는 취임 초부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듯한 이상한 발언들을 했지만 개혁을 위한 열성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었는데 육이오를 내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나에게는 육이오전쟁이라는 말도 몹시 거북하다.
육이오는 전쟁포고가 없었으니까 사변이라 불러야 한다.
내전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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