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기까지 지도교사 김정순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은 매번 절망하는 일이다. 클릭 한 번이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쏟아지는 무한한 사이버 세계에 내 손길로 만들어 낸 글이 활자화 되는 일은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논술이라는 명제에 지레 겁을 먹거나, 글쓰기 싫어하는 바람에 신청자가 없어 이렇게 책으로 엮어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교편을 잡던 7,80년대, 당시 10대 아이들은 모두 시인이고 문장가였다. 신록이 푸르른 날이면 오동나무 아래에서, 비 오는 날이면 빗방울을 바라보며, 코스모스 피는 날이면 원형화단을 돌면서 김소월을, 릴케를 마치 신들린 듯 읊어주었다. 일사분란하게 따라주던 그때 아이들은 학원을 다니지도, 개인지도도 받아보지 못했어도 훌륭하게 자라나 적재적소에서 성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볼 때 작금의 우리 교육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당시 나는 아이들에게 ‘대나무처럼 마디 있는 생활을 하라.’고 했다. 속은 비우면서 가끔씩 마디를 지으며 자신을 절제하기에 겉이 매끄럽고 단단하듯이 너희도 살아가는 동안 욕심은 버리고 성실성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했던 것 같다. 가끔 제자들이 찾아와 ‘마디 있는 생활을 하라’는 내 당부를 기억하고 있음을 볼 때 선생으로 살아온 게 뿌듯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당부의 말이 먹히지가 않는다. 생각하기 싫어하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간섭받지 않으려 하고, 질서를 귀찮아하고 공동체를 지겨워하는, 열린 입만 있고 듣는 귀가 없고, 학교는 잡담하다가 학원가는 정거장쯤으로 여기는 아이들.
방과후 학교는 이런 병폐를 막고 과외를 대체하는 방편으로 교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애쓰고 있다. 비논리적이고 긴 문장을 외면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논술 쓰기는 하늘에 별을 따오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나 단 1명이라도 믿고 따라와 준다면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리라. 이렇게 마음먹자 소수지만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학교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고 느꼈다.
소동파(蘇東坡) 같은 문장가도 초고가 한삼태기나 쌓일 정도로 고쳐 썼으며, 퇴(堆)를 써야할지 고(敲)로 할지를 두고두고 망설였던 당(唐) 시인 가도(賈島)처럼 몇 번씩 글을 갈고 닦은 아이들의 솜씨가 아까워 미숙하나마 묶어 낸다. 먼 훗날 웃으며 읽어볼 그 때를 위하여.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남태욱 교장선생님, 신선이, 이태삼 두 분 교감선생님 그리고 박정희 특활부장님, 편집디자인을 맡아주신 김봉수 연구부장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학교를 믿어주고 따라주지 않았다면 영원히 사장될 글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니 논술반 아이들에게 고맙다. 여기 참여한 논술반 아이들은 그 옛날 내 아이들처럼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성실함 그리고 무엇보다 배경에 부모님들의 따뜻한 시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이렇듯 모든 학부모님들이 학교를 믿어주는 한 교육은 바로 설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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