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 교리방

교회의 시작과 성장

주혜1 2011. 7. 30. 09:02

안녕하셨습니까?  오늘은 교회의 시작과 성장에 대해서 공부하겠습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실상 교회가 무엇인가? 라고 이야기할 때는 정확하게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선 기본 개념으로 가톨릭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교회와 본당과 공소이므로 간단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교회

교회라는 명칭은 그리스도교적인 개념이지 다른 종교에서는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희랍어에서 나왔는데 원래의 뜻은 군주가 어떤 정치적인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여 주려고 사절을 보내어 "백성들을 불러 모은다"는 뜻인데, 이것을 다른 말로 "백성들의 모임"이란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에 들어와서 교회 즉 신도들의 집회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하느님 백성들의 모임이 된 것입니다.  우리 천주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가톨릭이라는 단어로 통용되는데 가톨릭이란 뜻은 '공번된', '보편적'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어떤 특수한 민족이나 지역에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민족과 지역을 망라하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2) 본당

 교회란 일반적으로 가장 작은 단위로서 주임신부가 상주하는 지역 즉 본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본당이란 용어를 사용하여 왔습니다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낙산 본당이라고 부르던 것을 천주교 낙산 교회, 또는 낙산 천주교회라고도 부릅니다.

 

3) 공소

공소는 보통 어떤 본당에 소속되어 있는 지역교회를 말하는데 공소에는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어떤 공소에는 수녀가 있는 곳도 있지만 수녀도 없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공소에는 매주일 미사가 있는 것이 아니고 한 달에 한번 정도 그리고 특별한 경우에만 미사가 있고 보통은 공소예절 즉 말씀의 전례만 하게 됩니다.  사제의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서만 모든 성사가 집행됩니다.

 

도 입

가시적인 역사적 종교로서의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교회의 문제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진정한 그리스도교 교회에 관한 이러한 물음은 대답하기가 매우 어렵고 신학적으로도 많은 논쟁의 여지도 안고 있는 물음 중의 하나입니다.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제각기 나름대로의 진리를 주장하면서 곳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교의 종파가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친히 설립되었으며 그 뒤 제자들인 열 두 사도들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살아있는 전통 속에서 그의 구원의 진리를 간직하여 온 유일한 진리의 교회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교회는 2,000여년간 혹독한 박해를 비롯한 파란만장한 운명을 겪으면서도 세계를 석권하던 대 제국들의 흥망성쇠의 증인이 되면서 부단하게 자신의 정체를 지켜 왔습니다.  대부분의 가톨릭 신자들은 교회의 부단한 지속성을 교회 정체의 불멸성을 시사하는 표징으로 보고 자부와 긍지를 느껴 왔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이러한 형체와 존재당위성 등이 오늘날 다양하게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보편적 진리가 인정 받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새로운 사고가 요청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의 본질 규정에 관한 것으로 그리스도교가 세계적인 종교의 한 형태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로서의 교회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하나의 종교로 규정하는 관점은 예수의 본래의 의도와 정확하게 부합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결코 하나의 종교(유대교와 구별되는)를 창설하고자 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의 지상 생활 중 특정집단으로서 교회는 없었습니다  교회는 제자들의 부활과 성령체험에 입각하여 비로서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전 지상생활중 교회를 자신의 실존 그리고 언사와 행동을 통하여 준비하였고 설립하지는 않았습니다.  즉 자신의 언행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구현하였던 것입니다.

이제 머지 않아 하느님의 백성이 되실 여러분들이 어떠한 자세로 우리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 나라 건설에 투신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그 실상을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개

 1.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

하느님 나라의 선포와 구현은 예수의 공생활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공관 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라는 단어가 백 여회 이상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교회'라는 단어는 마태오 복음의 두 구절에서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교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중요성을 띤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는 마르코 복음 시초에 "시간이 찼으며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 구원의 복음을 믿으라"는 말로서 자신이 본래 원했던 바를 적절하게 요약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선포의 중심 개념이었습니다.  이 기본 개념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의 입에서 선포된 하느님 나라는 창조와 함께 주어지고 항상 존속하는 하느님의 세계 지배권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가까이 다가온 사건으로서 완전히 실현된 종말론적인 하느님의 자비를 뜻합니다.  여기서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전조건인 산상수훈과 같은 예수의 급진적인 윤리적 요청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산상수훈을 읽어 준다)

둘째는 하느님 나라는 예수의 선포 속에서는 충실한 법률 이행으로 이룩되거나 도입되는 어떤 것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고 어린이들처럼 받을 수 있을 뿐 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인간이 추구할 수는 있어도 하느님이 나라를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의 나라는 당시 로마 지배로부터 해방을 위해 싸우던 무력당원에게서 처럼 지상 민족적이고 종교 정치적 신정론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순수한 종교적 다스림입니다.  예수는 누차 반복해서 이스라엘 지상왕국을 외부세력의 지배와 공격으로부터 해방시켜 재건하기 위해 왔다는 오해를 물리쳐야 했습니다.  온갖 찬란한 현세적 기대, 하느님 왕국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려는 노력이며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것을 물리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정치적 세력과 지상 재물과 왕국이 아니라 회개와 신앙을 전제로 하는 나라입니다.

네째는 하느님의 나라는 죄인들과 무신적인 생활을 하는 자들에 대한 복수의 심판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구원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참회설교는 하느님의 분노에서 부터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나아갑니다.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는 위협과 멸망의 소식이 아니라 그것은 구원의 소식 평화의 소식이었습니다.  이 복음은 부유하고 강대한 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경멸받고 억압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었습니다.  외인과 경건한 자들뿐에게 만이 아니라 죄인들과 무신적인 인간들에게도 해당되었습니다.  이것이 소위 의롭고 경건하다는 인간들에게는 악표양이 되었습니다.  죄인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계시는 도래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지가 된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인간으로부터 하느님을 위한 극도의 결단을 요구합니다.  극단적인 회개는 구원의 시간이 채워져서 하느님의 나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에서의 믿음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가정과 집을 떠났으며 그는 다른 사람들도 가정과 사회의 끈에서 이끌어 내어서 제자로서 그를 따르게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각기 가정, 직업, 집과 고향을 떠나도록 소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는 사회혁명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각개 인간들을 극단적인 결단에서 내세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세상의 재물 중 하나를 택하도록 요청하였고 바로 세계 안에서 인간을 위해 각자가 하느님의 성의에 위탁하도록 요청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2. 예수의 교회 설립문제

 그러면 이제는 예수의 하느님 나라 선포와 교회가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지를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활 전 예수가 지상활동중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교회를 건설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그의 설교와 활동 속에서 어느 특정 집단만을 향하거나 이들을 일반 백성들로부터 선별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생애 당시 이러한 특수 단체는 주위에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는 의롭고 경건하고 순수한 자들에게만 파견된 것이 아니라 전 이스라엘 민중에게로 파견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과 악, 밀과 가라지를 조급하게 분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 이스라엘의 의인들과 죄인들을 포함하는 전체를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목자없는 양떼로 보았으며 열 두 제자의 선택도 나머지의 선별행위가 아니라 전 이스라엘의 소명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이나 자신의 설교를 듣고 회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대인과 예수는 조직적으로 결합하지는 않았습니다.  교회는 예수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이래 초대 그리스도 교계가 교회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부활 전 예수는 자신의 설교와 활동을 통해서 부활 후의 교회발생을 위한 기반을 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들이 부활 전 예수의 활약과 설교에 관심을 보였던 것은 이러한 때문입니다.  부활 후 교회의 발생은 부활 전 예수의 활약과 직접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최후의 만찬을 가졌던 그곳에서 성신을 기다리며 조용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부활하신지 50일) 갑자기 하늘에서 소리가 나며 큰 바람이 밀려오는 것 같더니 온 집에 충만하고 집안에 앉았던 마리아와 사도들 위에 불 혀 모양이 나타나 머물렀습니다.  바로 성령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사도들은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들이 당신이 하시는 말씀을 잘 알아 듣지 못함을 책망하면서 미련하고 예언자들의 말씀을 믿기에 느린 자(루가 24, 25)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성령강림에 고무된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수 개국어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본격적인 대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교회탄생의 출발이었고 기쁨이 충만한 활기찬 공동체로서 서로 다른 곳에까지 교회가 형성되었으며 사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굳은 확신과 용기를 가지고 그리스도의 메시지, 즉 복된 소식을 전파하였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이니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하리라" 약속하시며 베드로 위에 세운 약속이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성신강림날에 온 세상에 교회가 창립되었다는 것을 선포함으로써 우리 눈에 가시적인 즉, 볼 수 있는 한 단체로서 역사 안에 출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성신강림날 창립되었다고 하지만 교회라는 것은 이미 천주 성부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성자를 구세주로 이 세상에 파견하기로 예정하신 구원 계획 안에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있는 낙산 성당, 이것은 언제부터 있기 시작했느냐고 물으면 통속적인 대답으로는 건축업자들의 작업이 끝난 후 낙성식을 마치고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집은 설계사의 머리 안에서 이미 있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벽돌을 쌓고 철근 작업을 하고 지붕을 얹고 하는 모든 작업을 마친 후에 이 집이 있게 된 것이 아니라 아무 것도 없을 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설계사의 머리 안에서 이런 집을 짓겠다고 생각하고 구상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낙산 성당은 존재했다고 하는 대답이 교회의 대답입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베드로의 설교로서 처음으로 신자들이 모였을 그때가 아니라, 이미 태초에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그때부터 즉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경륜 안에 이 교회는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구체적으로 이 역사상에 나타날 때까지 오랜 구약의 역사를 통해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그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준비하였고 또 예수가 직접 와서 3년동안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육하여 장차 그 제자들이 인간 구원을 위해서 수행해야 할 역할을 제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가까운 준비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인 단체로서 출현한 것은 비로서 성령강림을 통해서 입니다.  한 건물에 비긴다면, 성령강림날은 바로 이 건물의 낙성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건물이 낙성식으로서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사의 머리 안에서 이미 있기 시작했던 것처럼 천주 성부의 인간 구원을 위한 계획 안에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하느님과 직결이 되었는데, 그러면 천주 성부께서 인간 구원을 계획하신 것이 언제냐? 고 하면 아무도 모릅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 시작에서부터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출발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언제부터 성부의 머리 안에서 이런 교회라는 것의 설계가 섰는지는 말할 수 없으므로, 하느님의 깊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이 교회는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자기자신의 출발점에서부터 이것은 하느님의 신비를 연장하는 것이지 어떤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교회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설계하신 그 최초의 가장 기본적인 설계는 소위 전문적인 술어로 구원의 경륜이라고 말합니다.  구원의 경륜 즉 인간을 구하기 위한 경륜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로 계획한 그 계획서인 이 경륜 안에서 교회는 이미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교회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업적을 계승하는 그리고 계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연장이 바로 교회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오늘의 이 교회 안에 있어서도 오직 그리스도 자신 뿐입니다.  우리가 통속적으로 교회가 사람을 구원하는 작업을 한다든가 선교 사업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과히 잘못된 표현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의 교회를 통하여 오늘의 교회를 도구로 이용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지 교회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뺀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는 우리의 행위와 제도 등으로 가시적이지만 순전히 인간적인 사리의 가시적 부분과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가시적인 것들만으로 교회가 성립될 수는 없고 불가시적인 면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란 하느님의 말씀의 공동체로서 성사를 통하여 구원의 은총을 주시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인간 사이에 놓인 중개자가 아니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장소인 것입니다.  가시적이면서도 불가시적인 이 교회는 역사에 속하면서도 역사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기를 정화시켜야 합니다.

 

3. 세상 안에 사는 교회

 교회는 거룩한 성사를 집행하므로 교회 자체는 거룩하나 교회 안에는 죄인도 포함하고 있기에 교회는 의인의 교회이며 동시에 죄인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들을 살펴 봅시다.

 

1) 교회는 거룩하다.

원리적으로 본다면 하느님만이 거룩하시나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에게 결합시키기 때문이며,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소이기에 거룩합니다.  이것은 즉 교회는 인간성화를 이룩하는 것이기에 성사와 은총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2) 죄인도 속한 교회

교회는 죄인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죄는 거부하지만 죄인은 맞아 들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천사들의 모임이 아니라 장차 구원되어야 할 인간들의 모임 입니다.  또 구원되어야 할 인간의 마음만 모인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약점과 고뇌와 잘못까지 다 함께 모인 것이 교회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성직자나 수도자나 평신도나 외교인이나 모두가 다 죄인인 것입니다.  믿는 이와 안 믿는 이와의 차이는 하나입니다.  즉 죄인은 죄인이로되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조금 먼저 깨닫는 이가 믿는 이이고 각자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안 믿는 자입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우리 교회가 살아온 구체적인 역사적 발자취는 너무나 많은 약점에 휘감겨 있으나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교회 속에서도 위대한 성덕을 갖춘 이가 얼마나 많이 배출되었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 안에 언제나 살아 계시고 다스리시고 지도하시는 그리스도와 성령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4. 초대교회 공동체

 이제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성령강림 이후에 초대교회 안에서 생활화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가 성령을 받고 유사이래 인간들 사이의 분리와 장벽이 되었던 성과 신분의 장벽을 철폐하고 평등한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 것입니다.  이 공동체 속에서의 재산은 모두 공동 소유였고 서로가 필요한 만큼만 나누어 가졌고 주위환경과는 전혀 다른 대조적인 생활 양식을 보여 주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이를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던 것입니다.

 

종합 심화 및 실천

 

지금까지 교회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고 구현하였던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의 메시지를 전파하고 생활화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가 바로 신비에 싸여 있는 지상에서 현존하는 종말론적 하느님 나라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더라도 초대교회는 유다의 문화권과 생활권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좀 다르게 생각하는 어떤 가치 즉 그리스도가 제시한 다른 가치를 수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위해서는 기존의 유다생활 내지 문화권의 결별이 요청되었고 그리스도를 선택한다는 것, 회개를 한다는 것은 기존 세계와의 결별 혹은 마찰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진실된 새로운 가치를 선택하는 삶의 양식, 이런 회개와 함께 두번째로 나타나는 것이 이렇게 회개한 사람들이 공동체 친교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또한 회개하고, 회개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는 언제나 이웃에 봉사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신앙인과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소명을 바로 이 봉사에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회개를 통하여 삶이 변화되고 사랑과 봉사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 우리의 부족한 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채워주셔서 거룩한 삶이 되도록 간구 합시다.  그리고 역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불의와 잘못이 있을 수 있음도 생각하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 되도록 함께 노력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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