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세(代洗)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교회는 위급한 경우는 사제가 아닌 누구라도 성세성사를 베풀 수 있게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세란 성세성사를 대신한다는 뜻이 아니라 간략한 세례식이란 뜻입니다.
1) 대세를 받을 수 있는 조건
①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② 건강이 회복되면 정상적인 교리교육을 받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한다.
③ 그리스도께 귀의하여 미신을 끊어버린다는 진지한 표시가 있어야 한다.
④ 그리스도 신자의 윤리에 위배되는 상태에 있지 않아야 한다.
2) 대세자가 알아야 할 교리
비록 병자가 위독한 상태에서 대세를 받는다 하여도 천주교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다음의 네 가지는 분명히 알고 깨닫도록 하여야 합니다.
① 천주존재(天主存在)
② 삼위일체(三位一體)
③ 강생구속(降生救贖)
④ 상선벌악(賞善罰惡)
이밖에도 시간이 있으면 성세성사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지금까지 잘못한 모든 일에 대하여 진심으로 통해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아울러 천주교 신자들의 표시라 할 수 있는 성호경도 익히도록 합니다.
3) 대세전 준비
대세집전자는 병자에게 대세를 베풀기 전에 과연 그가 통회의 마음이 있는 지의 여부와 성세를 받음으로써 구원받기를 원하는 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 혹은 대모를 선정하고 신자 중에 증인을 세운 다음 세례명을 정한 다음 대세를 집행합니다.
4) 세례
* 집전자는 미리 정한 병자의 세례명을 부르며 성세를 베풉니다.
+ 나는 성부와(이마에 첫 번째 물을 붓고) 성자와(두번째 물을 붓고) 성신의 이름으로(세 번째 물을 붓고) (아무)에게 세례를 줍니다.
* '이마'에 물로 씻을 때 동시에 경문을 외운다. 임종자나 병자의 죽음이 임박하여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에는 다른 예식은 다 생략하고 다만 병자의 머리에 물을 부으면서 세례 예식만 거행해도 무방하다.
2. 조건부 대세
조건부 대세란 병자가 의식을 잃었기 때문에 성세를 받겠다는 원의가 분명치 않을 경우 또는 이미 생사가 의심스러울 경우에 주게 됩니다. 성세를 받을 만한 조건이 의심스러울 때에는 '만일 당신이 세례를 받을 만하면'이라는 조건을 먼저 붙여야 합니다. 이를 테면 예비신자로서 성세를 준비하던 사람이 갑자기 의식을 잃은 경우라면 그 사람의 원의를 의심할 여지가 없겠으나 지금까지 미신을 숭상해 왔다든지 평소 하느님을 의심해 왔다면 그 원의를 의심할 여지가 있습니다. 또한 심장의 고동과 호흡이 중단된 경우라 하더라도 뇌세포는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심장의 공동과 호흡이 중단된 후라도 20여 분까지는 조건부로 성세를 베풀 수 있습니다.
조건부 대세의 경우에는 그 성세의 유효여부는 오직 당사자의 처한 상태에 따라 하느님께서 판단하실 것입니다.
3. 대세 후에 할 일
대세 집전자는 되도록 빨리 대세문서를 작성하여 본당신부에게 제출하여야 합니다. 대세문서는 혹시 대세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장례절차에도 필요할 뿐 아니라 건강회복시 보례를 받게 될 때와 교적작성 등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
특히 병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못다 한 교리를 계속해서 가르쳐야 하며 본당 신부에게 알려 보례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병자로 하여금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받게 하며 본당신부의 판단에 따라 견진성사와 병자성사도 받아 온전히 성사의 은총 안에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병자가 사망한다면 가족들에게 교회의 장례 절차를 알려주고 되도록 많은 신자들이 연도를 바칠 수 있도록 주선해 주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장례를 도와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와 희생적인 봉사는 고인은 물론 유족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또한 본당신부에게 사망신고를 하여 문서작성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도 입
1. 시작기도
마태오 복음 8, 14-17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
2. 질병은 우리에게 축복인가 불행인가
우리는 지난 주에 신품성사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칠성사 중 병자성사에 대하여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아팠던 기억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팠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그리고 질병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요.(몇명 발표하게 함)
프랑스의 문호 앙드레 지드는 1930, 7, 25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나는 질병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문을 열 수 있게 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실 질병만이 열 수 있는 어떤 문이 있다고 믿는다. 어쨌든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의 건강이다. 아마 질병은 몇가지 진실을 다하지 못하게 우리를 가로막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건강도 어떤 다른 진실을 대하지 못하게 우리를 가로막거나 그것과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는다"
우리는 병 때문에 원만한 사귐을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건전한 신체를 가져야만 사회와도 건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체의 일부분이라도 병이 들면 온 몸의 기능이 약해집니다. 병자는 그때부터 심리적인 위축과도 싸워야 됩니다.
분명히 질병은 악입니다. 질병은 낯익은 사람들, 혹은 일상 보고 듣고 하던 주위 정황과 격리되어 병고에 시달리며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지루한 투병생활을 해야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혹은 죽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자주 덮쳐 옵니다. 조금이라도 충격을 받으면 금세 비관하고, 어쩌다 약간의 빛이 보이면 당장 가당찮은 희망을 품곤 합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려니 고통스럽고, 노상 남의 손에 의지하려니 기가 죽습니다.
병자들은 의약품보다 자기를 인간적으로 가까이 해 주고 이해해 주기를 더 바라지만 그런 소망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습니다. 비통한 심정으로 인생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병 때문에 이런 저런 계획을 얼마 동안 혹은 영구히 포기해야 하는 것이 괴롭고, 이제 자기는 아무 데도 쓸모없는 존재라고 자학하고 절망에 빠집니다. 자기 존재의 붕괴가 눈앞에 닥쳐온 것 같습니다. 따라서 건강할 때는 무시해 버리고 생각지도 않았던 문제들, 분주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병으로 인해 명백하게 의식의 표면에 떠오르는 일이 있습니다. 가령 인생의 의미, 가치, 죽음, 사후의 세상 일 등등입니다.
그런데도 지드는 질병이 건강한 사람이 예측하지 못하는 새로운 현실로 들어서게 하는 '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질병으로 말미암아 그 전보다 더 사려 깊고 폭넓고 관대하고 선량하고 포용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질병은 우리를 존재의 궁극적 근원인 하느님께로 이끌고 그분에게 의탁한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모든 질병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축복이냐 불행이냐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대하느냐 달려 있습니다. 질병은 괴롭고 고약한 것이지만, 축복이 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건강하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 큰 질병에 걸렸을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되며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병자가 주변의 사물에 대한 집착을 단념하고 한계에 다다른 생명 자체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믿음을 갖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에 동참하면서, 삶의 의미를 새로 이해하고 세상 사물과 다른 사람들을 새로운 눈으로 보며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 개
1.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1) 복음서의 치유사화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는 성서의 많은 부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을 보면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8, 1-4), 백인대장의 하인을 고치신 예수(8, 5-13),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8, 14-17),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9, 1-8),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 ; 살아난 회당장의 딸(9, 18-26), 소경 두 사람을 고치심(9, 27-31), 벙어리를 고치심(9, 32-34)과 악령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셨음을 통해 예수께서 병자들에 대한 관심이 어떠하셨는 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마르코, 루가 복음에서도 예수님의 병자치유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2) 표징으로서의 치유
예수님 당시에 질병과 죽음은 죄의 결과로 알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병자들에 대한 태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레위기 13, 42-46을 보면, "정수리에나 앞 이마에 희끗 희끗하고 불그스레한 종기가 생겨나 다른 살갖에 생기는 악성 피부병 같은 것이 보이면, 그는 악성 피부병이 머리에 난 환자이므로 사제는 반드시 그를 부정한 사람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악성 피부병 환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우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하고 외쳐야 한다. 병이 있는 동안은 그는 부정을 벗지 못한다. 부정하니 만큼, 그는 진지밖에 자리잡고 따로 살아야 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또한 벙어리나 소경들은 자신의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의 규정을 다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죄인을 낙인 찍혀 사회적으로 소외되었습니다.
병자들이 겪는 고통은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신학생 때 겨울방학이 되면 열흘씩 나환자 정착마을에 가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살고 교리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한결같이 자신의 병 때문에 겪어야 했던 아픔이었습니다. 육체적 고통도 많았지만 육체적 고통보다는 정신적으로 겪어야 했던 고통이 더 크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병에 걸림으로써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버림받고 이 세상하고는 별개의 인간으로 취급됨으로써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답니다. 그분들은 병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부모, 가족들에게조차 철저히 버림받고 육체적인 고통과 사회적인 소외, 경제적 빈곤으로 시달리셨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자신들이 병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소외를 당하고 있다면서 자신들이 겪어야 했던 많은 아픔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차를 탈 때라든지,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의 태도, 자녀들의 교육문제, 결혼문제 등이 닥쳤을 때 사회의 이곳 저곳에서 자신들을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지 않다는 아픔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돈이나 물질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접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피해야 하는 사람으로 바로보고 대한다면 우리가 그분들을 죽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병자들의 아픔은 예수님 시대에는 더 하였습니다. 앞에서 잠시 살펴보았지만 당시의 병자들은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되어야 했고 인간으로써 대접을 받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는 죄인이요", "나는 죄인이요"하며 외치고 다녀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과 함께 하면 자신도 부정한 사람이 됨으로 가까이 하여 하지 않고 오히려 돌 등을 던져 병자의 접근을 막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온몸으로 껴안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죄인이라고 부르던 병자들에 대한 인간선언이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죄인이 아닙니다.", "당신 역시 하느님이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이며, 귀한 존재입니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의 아픈 육체 속에 숨겨져 있던 "인간"이라는 보물을 발견하고 드러내 준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병자들은 자기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 깊은 체념과 절망의 아픔에서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의 병이 치유되고 이 치유는 바로 육체적 치유로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믿음을 요구하시고, 적어도 먼저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활동에 마음을 열기를 촉구하셨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호기심을 가지고 신기한 일만을 기대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기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치유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힘차게 드러내 보이는 메시아라는 표징입니다. 구약시대에 예언자 이사야가 예언한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이사 35, 5)라는 구원의 시대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온 것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는 영육간의 전인적(全人的) 치유에 대한 깊은 열망을 표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확인하신 경우에는 병자의 그 치유된 정신적 내면에서부터 선물로서의 외적 치유도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은 하느님 나라가 지금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2. 병자성사의 설정
병자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관심은 초대교회에도 계속 이어졌고 지금까지 교회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병에 걸렸을 때나 큰 수술을 받을 때 또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병자에게 힘을 주기 위해 베푸는 성사가 병자성사입니다. 사제는 축성된 올리브 기름을 병자의 이마와 양 손에 바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하고 부활의 기쁨을 인도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고대에는 기름이 상처의 치료약으로 사용되었는데 이와 같은 의미를 교회에서 병자성사에 도입하여 상징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기도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표시하는 것으로서 마술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병자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지금의 고통과 인내를 그리스도의 고통과 합쳐서 바칩니다. 그리고 이 고통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이러한 병자성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음을 성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청하십시오. 원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구하는 기도는 앓는 사람을 낫게 할 것이며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지은 죄가 있다면 그 죄도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모두 온전해질 것입니다.』(야고보 5, 14-16)
이러한 가르침에 의해 교회는 병자성사를 통해 병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3. 병자성사의 개념
병자성사는 간단히 병이나 사고, 그리고 노쇠현상으로 죽을 위험이 있는 신자에게 전례의 기도문에 따라 사제가 '축성된 기름(성유)'을 발라 신자를 도와 견고케 하는 성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옛날부터 '종부성사'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 성사를 임종 때에만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병자성사는 죽음의 위험이 없이 비교적 중병자를 대상으로 수여되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병자는 이 성사를 받음으로써 영적으로 강해지고 또 육체적으로 치유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4. 병자성사의 대상
① 적어도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는 성인들이 받는 성사이고, 판단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는 죽을 위험이 있어도 병자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② 사형수, 죽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군인들은 이 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③ 고령의 노인들은 그 자체를 병으로 보기 때문에 병자성사를 볼 수 있습니다.
④ 위험한 병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에 받을 수 있습니다.
⑤ 병자가 이 성사를 받은 후 건강을 회복하였다가 다시 병들었을 경우에 받을 수 있습니다.
⑥ 동일한 병세가 계속 지속되다 중태에 빠지게 된 경우에 받을 수 있습니다.
5. 병자성사 예식
병이나 사고, 그리고 노쇠현상으로 죽을 위험이 있는 신자가 있다면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청해 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병자성사를 청했을 때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해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 병자성사를 청할 때 집에서 준비할 일
① 영혼의 준비 : 신망애 삼덕의 정이 일으키도록 하여 주고, 자기 죄를 성찰하여 통회를 발하게 끔 한다. 타인과 불목한 일이 있으면 용서케 하고, 채무 관계라든가 기타 병자로 하여금 심적 부담이 없게 해야 한다.
② 육신의 준비 : 성유를 바를 부분(이마와 두 손바닥)을 깨끗히 한다.
③ 방을 깨끗이 하고, 조그만 탁자 위에 십자고상, 초, 깨끗한 물을 담은 그릇 수저등을 준비한다.
2) 병자성사 예식중 우리의 할일
① 가족과 사제는 병자에게, 그가 결코 홀로 버림받지 않았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느끼게 해야 한다. 그래서 병자성사가 베풀어질 때는 반드시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동석해야 한다.
② 병자성사는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에서 우러나는 신뢰의 기도와 성유로 베풀어진다.
③ 병자는 도유예절에 앞서 가능하면 고백성사를 보아야 한다. 고백성사가 어려울 때는 사제가 병자와 동석자들에게 참회를 권고하고 고백의 기도를 합송한다.
6. 병자성사의 효과
병자성사는 그리스도께서 병자에게 가까이 오셔서 병자가 불평하거나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위로와 용기를 주십니다. 또한 당신 친히 어린 양으로써 우리의 허물과 고통을 대신 지신 의미를 깨우쳐 주시고, 인내와 용기를 병고를 극복하도록 힘을 복돋아 주십니다.
병자의 의식이 분명하고 병상이 허락하는 경우에는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함께 줍니다.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위로와 용기를 얻어 그분의 십자가 수난과 동참하고 자신의 병고를 견디어낼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성체를 영하는 것은 고사하고 말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의식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는데, 그러한 때에 병자에게 기름 바름은 도움이 됩니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교회의 기도가 보증되는 것은 큰 격려가 됩니다. 병자성사의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병자에게 성령의 은총을 받게 해 줌으로써 죄 중에 있는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②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써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게 한다.
③ 악마의 유혹과 죽음의 번민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④ 영신적인 구원에 도움이 될 만한 건강을 회복시켜 준다.
⑤ 필요한 경우에는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인적인 참회의 완성으로 이끌어 준다.
종 합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병자성사는 병중에 있거나 혹은 임종을 앞둔 신자들이 받은 성사입니다. 병자성사는 환자로 하여금 병에서 오는 실망과 낙담과 소심에서 구출되어 고통과 질병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움직여 주심을 알 수 있게 해 줌으로써 희망과 믿음으로 자신을 그리스도께 맡길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병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되찾게 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병자성사는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됩니다. 이때 병자성사는 임종하는 병자에게 마음의 평안함과 사후의 세계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많은 사제들은 죽음에 임박한 많은 신자들이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지금까지 병과 그에 따르는 번뇌와 무서움에서 해방되어 마음도 몸도 평안한 상태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병자성사는 나약해진 병자에게 그리스도의 고통에 부활에 참여시키게 함으로 위로와 희망을 주며 임종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심 화
요한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유언으로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요한 14, 1-3).
이것은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인생의 고통에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격려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 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요한 16, 20-22).
예수님께서는 아이를 낳는 어머니의 예를 들어서 큰 기쁨을 위해 인생의 시련을 참고 견디도록 격려하십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겪으실 죽음의 고통과 제자들이 그 때에 경험할 어둠과 슬픔이 부활한 예수님과의 만남으로써 극복될 것이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전하신 이후로, 교회는 언제나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이 말씀을 항상 새롭게 이해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경험하지 않을 수 없는 고통, 건강의 쇠퇴, 피로, 늙음과 질병, 매일의 고민과 고뇌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죄와 죽음의 지배하에 있는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행해진 하느님의 구원사업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이 하느님의 사랑이 승리를 거두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리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보증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역시 상처를 입고 있는 현실 세계속에서 우리는 신앙에 의해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멀지 않아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날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실 천
병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와 교회의 걱정과 사랑을 함께 나누어 실천하는 모든 신자들은 각자의 형편대로 병자를 방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격려하고 그들의 어려움을 형제답게 도와줌으로써 병자들을 정성껏 돌보아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대하셨던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우리 주위에 있는 친척이나 이웃들 중에 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이번 주에 1번 이상 방문하여 기도해 주시고 말벗이 되어주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끝 기도
병자를 위한 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않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이시어
(아무)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가톨릭 기도서],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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