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주혜1 2013. 4. 27. 09:09

 

 

 

꽃은 영원히 자신의 비밀을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김주혜

 

15년만에 개방된 제주도 돈내코 숲에는

야생버섯이 수두룩 살고 있다

 

학회에도 알려지지 않은 희귀버섯들이

축포를 터뜨리며 모락모락

포자를 날리며 깜쪽같이 살고 있는 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말똥버섯, 솔방울털버섯, 꼬마방귀버섯, 흰광대버섯,

뿐이랴,

꽃구름버섯, 오징어버섯, 족제비눈물버섯, 달걀버섯........!

 

수억만 년의 시공을 건너온 바람이

먹이를 물어다 주고

탐라의 지층 밑에 잠들어 있던 씨앗이

소리 없는 활시위로 이어져온 은밀한 거래

 

내 블로그 다이어리 카테고리는

개방되지 않은 나만의 숲이다

그곳에 갇혀있는 글자들은

희귀버섯들보다 더 긴밀한 작업들을 한다

 

m 이라는 꽃구름 같은 이름으로

@ 라는 말똥 같은 이름으로

& 라는 솔방울털 같은 이름으로

Q 라는 달걀귀신 같은 이름으로

 

그들은 내게 돈내코 숲속보다 더 깊고

음습한 거래를 원할 것이다

그 화려하고 달콤한 겉모양에 속아 자칫

전신에 독이 퍼지지 않도록 굳게 잠가둘 일이다.

                           -2011.문학과 창작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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