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혜 시평

김주혜의 시에서는 바람이 분다/ 시인 전영주

주혜1 2015. 10. 25. 11:10

김주혜의 시에서는 바람이 분다

                  

              전영주

 

김주혜의 시에서는 바람이 분다. 바람은 고정되지 않은 무정형의 힘이다 바람은 사물을 뒤흔들고 있는 그 순간에만 자산의 몸을 보여준다. 때문에 김주혜의 몸은 긴급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시에 나타난다.

 

 내 머리 팔 다리 그것들이 모두

산산조각 나는 걸 지켜보겠어

풀잎의 눈물을 나무의 사라짐을

그리고 조그맣게 부서져내리는 노란 태양까지도

지금 ,그가 가꾼 시인의 정원에는

아직도 지옥의 바람이 불고 있어. 뜨겁게.

                   -측백나무와 별과 길 전문

 

바람은 한곳에 머물지 않는다.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바뀐다. 한 마디로 바람은 변화무쌍이다. 김주혜의 시를 관통하는 바람은 '변화에의 꿈'이다. 그것은 육체와 자연과 태양까지도 부숴버릴 수 잇는 강렬한 욕망이기에 시인은 죄의식을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죄의식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바람의 몸을 그리워 한다.

 

붉은 병정개미들이 엉덩이를 들어올리며 엎드린다.

바람이 앞가슴에 죄처럼 달라붙는 북한산 정상,

누군가 발꿑에 바위를 매달고 예수처럼 팔을 벌린 채

소리소리 지르며 몸을 흔들고 있다.

                                          -나무들 정상에 서서 부분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

바위 속에 움직이지 않고 묻혀있다.

내 눈으로 나의 몸을 알아볼 수 없으니

까마귀의 울음이 바위를 품어안을 때

떠돌며 떠돌며 바람을 일으키리니

바람이 불 때면 잘 들어보라

그 바람 속에

그리 오래지 않은 그대의 영혼이

만신창이가 된 채 섞여 있으리니

             -바람의 언덕 부분

 

김주혜가 인식하는 몸은 내 눈으로 나의 몸을 알아볼 수 없는 바람 같은 몸이다. 있긴 있는데 병명을 알 수 없는 어떤 병이다. 그 몸은 위의 시에서처럼 만신창이가 된 영혼, 정신이 소거된 채 그냥 몸에서 쑥 빠져나간 영혼인지도 모르겠다.

김주혜의 몸은 맨살에 그대로 와닿는 바람, 상처를 ㄹ건드리고 덧나게 하는 바람, 죄처럼 가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바람으로 인해 그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미지의 형성보다는 언어 그 자체의 사실적인 묘사의 힘에 전적으로 투신하는 그이 시어는 그래서 힘차고 변화무쌍하다. 그 바람이 정지하는 곳, 그곳은 어딜까? 죽음이다 거기에서 바람의 몸은 까만구두를 벗는다.

 

하얗게 내뻗은 발목, 툭툭 튀어나온 살점

내장들.....죽음, 아주 가까이에서

까만 구두가 동공처럼 열려 있다.

 

어디로 갈까?

                     - 응급실 전문

 

몸이 벗어놓은 구두 한 켤레, 그것은 지금 동공처럼 열려있다. '어디로 갈까?' 바람의 몸을 벗어놓고 지금 까만 구두는 다른 몸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로 가든 이제는 바람에 시달리고 휘둘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 아닌가. 어깨의 힘을 빼도 좀더 여유롭고 느긋하게 가보는 것은 어떨가? 氣流처럼 . 응급실은 김주헤의 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풍향계의 화살표라고 생각된다.(시인 전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