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누각 저 누각 허수경 장마 雨中에 아버지와 나는 산을 올랐습니다. 산이래야 일테면 베개머리모양 가벼운 거였지만 산행은 일테면 베개머리를 괴고 누운 한 마음같이 무거운 거였지요. 뽀얀 물안개가 꼼짝도 않고 그러나 움직임의 경계를 지우며 우리가 내버리고 온 다른 등성이를 감싸고 있.. 좋은 시 2014.08.06
不醉不歸 不醉不歸 허수경 어느 해 봄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그늘이었는.. 좋은 시 2014.08.06
도화 아래 잠들다 도화 아래 잠들다 김선우 동쪽 바다 가는 길 도화 만발했길래 과수원에 들어 색(色)을 탐했네 온 마음 모아 색을 쓰는 도화 어여쁘니 요절을 꿈꾸던 내 청춘이 갔음을 아네 가담하지 않아도 무거워지는 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온당한가 이 봄에도 이 별엔 분분한 포화, 바람에 실려 송화.. 좋은 시 2014.08.05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김순이 맨살의 얼굴로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외로울 때마다 바다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바닷가 태생 구름에서 일어나 거슬러 부는 바람에 쥐어박히며 자랐으니 어디에서고 따라붙는 소금기 비늘되어 살속 깊이 박혔다 떨치고 어.. 좋은 시 2014.08.05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김태정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김태정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 좋은 시 2014.06.14
실망했던 세상/ 이생진 실망했던 세상 이생진 누구나 한 번쯤은 실망했던 세상을 그래도 달래 가며 살아가는 것은 기특하다. 어지러운 틈새로 봄이 순회처럼 들어오면 꾀꼬리 걱정을 하고 나뭇잎이 푸르르면 내 몸매도 유월로 차리던 사람 일시불을 꺼내주며 이 세상 끝날 때까지 살라고 졸라도 살아가기 막막.. 좋은 시 2014.06.05
이 할애비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말이다/ 임 보 이 할애비가 살았던 어린 시절은 말이다 - 임보 어리석은 무리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단다 이어지는 흉년과 공출로 곡식을 잃고 끼니를 거르며 굶주리고 살았단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도 목이 마르면 개울물을 손바닥으로 움켜쥐어 마셨단다 젊은 여인.. 좋은 시 2014.05.21
인연/ 최택만 꽃과 나비 인 연 - 최택만 산다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를 떠도는 한줄기 바람이 되는 것이며 바람의 짓들이 삶의 짓들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또 바람이 될 고요함이 죽음이다 인연이라는 것은 세상을 내려다 보는 한조각 구름이 쏟아내는 비에 젖는 일이며 구름의 짓들이 인연의 짓들이다 .. 좋은 시 2014.05.21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문태준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 문태준 외떨어져 살아도 좋을 일 마루에 앉아 신록에 막 비 듣는 것 보네 신록에 빗방울이 비치네 내 눈에 녹두 같은 비 살구꽃은 어느새 푸른 살구 열매를 맺고 나는 오글오글 떼 지어 놀다 돌아온 아이의 손톱을 깎네 모시조개가 모래를 뱉어놓.. 좋은 시 2014.05.21
[스크랩] 풍장(風葬) - 황동규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 좋은 시 2014.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