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비 오는 날 /롱펠로우 비오는 날 - 롱펠로우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하여라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고, 허물어지는 벽에는 담쟁이 덩굴, 바람이 불 때마다 잎을 날려가네, 날은 춥고, 쓸쓸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하네, 비는 내리고 바람은 그치지 않네. 내 생각은 허물어지는 과거의 담벽에 붙어 불어오는 질.. 좋은 시 2011.10.14
물푸레나무/ 김태정 김태정,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고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 좋은 시 2011.08.22
닭의 하안거/ 고진하 「닭의 하안거(夏安居)」 고진하 이 오뉴월 염천에 우리 집 암탉 두 마리가 알을 품었다 한 둥우리 속에 두 마리가 알도 없는데 낳는 족족 다 꺼내 먹어버려 알도 없는데 없는 알을 품고 없는 알을 요리조리 굴리며 이 무더위를 견디느라 헉헉거린다 닭대가리! 아무리 그래도 그렇.. 좋은 시 2011.08.15
독일 어느 노인의 시/ 김수환추기경 옮김 독일 어느 노인의 시 세상에서 으뜸인 일은? 기쁜 마음으로 나이 먹고, 일하고 싶지만 참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스러워질 때 희망을 갖고, 마음 편히 공손하게 내 십자가를 지는 일. 젊은이가 힘차게 하느님 길을 가도, 시기하지 않고, 남을 위해 일 하기보다 겸손되이 남의 도움을 받으며, 몸.. 좋은 시 2011.07.15
세월은 날 버리고 가거늘 세월은 날 버리고 가거늘 白日淪西阿 (백일윤서아) 해가 서산으로 기울자 素月出東嶺 (소월출동령) 밝은 달이 산 위로 떠 오른다 遙遙萬理輝 (요요만리휘) 달빛은 아득히 만리를 비추고 蕩蕩空中景 (탕탕공중경) 밝은 빛 허공 중에 흩어지네 風來入房戶 (풍래입방호) 차가운 바람은 문풍지로 스며들고 .. 좋은 시 2011.04.23
두 번째 심장/ 차주일 차주일, 「두 번째 심장」 내 심장은 부모의 발걸음 소리였다. 그러나 너를 처음 본 순간 멎었던 내 심장은 새로운 박동을 시작했다 멎음이 만들어낸 박동에 내 숨은 산모의 신음처럼 팽창하였고 네 첫 심장의 마지막 박동은 내 두 번째 심장의 첫 박동이 되었다 사랑은 내 몸에서 너의 맥이 생존.. 좋은 시 2011.03.14
[스크랩]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 / 이길상[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속옷 속의 카잔차키스 / 이길상 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밤, 속옷을 갤 때마다 개어지.. 좋은 시 2011.02.22
촛불에게 외 2편 / 윤문자 촛불에게 윤문자 가까스로 치음齒音으로 말을 건넸더니 초경처럼 찌르르 울어버린 소녀였다가 살래살래 고개를 젖는 방년芳年의 처녀였다가 이윽고 활활 타오르는 중년의 여자였다가. 꽃잎 유언 윤문자 꽃나무 그늘 아래 나비가 한 마리 떨어져 있다 그가 남긴 유언장 나도 꽃 잎. 분홍 장갑 윤문자 .. 좋은 시 2011.02.15
그의 사진/ 나희덕 나희덕, 「그의 사진」 나희덕 그가 쏟아놓고 간 물이 마르기 위해서는 얼마간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웃고 있지만 실은 남아있는 물기를 거두어들이는 중이다 물기를 빨아들이는 그림자처럼 그의 사진은 그보다 집을 잘 지킨다 사진의 배웅을 받으며 나갔다 사진을 보.. 좋은 시 2011.02.14
그날/ 이성복 그날 - 이성복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좋은 시 2011.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