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자 교리방

인간이란 무엇인가

주혜1 2011. 4. 5. 14:47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우리는 우리가 겪게 되는 사건들을 통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던지는 질문은 바로 궁극적으로 인간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듣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런 말들이 의미하는 것은 먼저 인간은 계속해서 자신의 신원에 대하여 확실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것에 대하여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된다는 것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이지요. 그래서 인간은 자연계 안에서 영장의 위치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나름대로의 많은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런 정의들이 우리에게 이해되어지지만 그런 정의들이 명쾌하게 우리의 동의를 얻어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 해답을 우리의 단순한 지성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를 지어내시고 양육하시는 창조주께 우리의 모습을 비추지 않는 가운데 나타나는 결론이기에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 여러 가지 인간에 대한 정의가 그릇된 것은 아니고 그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제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 신앙 안에서 우리의 신원을 정립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우리 인간은 무엇인가를,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 안에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요청의 당위성은 우리의 지성 안에서도 그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이가 그 무엇보다도 우리를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뜻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찾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당신의 계시를 드러내고 계시는 성서 안에서 인간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구약성서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간관은 어떠한 가를 살피고자 합니다.

 

전 개

 

1. 영육 두 요소의 단일 유기체인 인간

 

성서는 언제나 '네페쉬(néfesh, 영혼)'와 '바사르(basar, 육체)'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 유기체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용어설명)

'네페쉬' - 단순히 영혼이라고 말하기 어렵고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영혼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 목구멍 (요나 2, 6)

- 입맛, 갈망의 뜻(잠언 12, 10 : 13, 2)

결국 네페쉬는 살아 있는 존재를 뜻합니다.

'바사르' - 바사르는 네페쉬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인간의 영혼을 알게하는 인간의 신체기관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사르라는 것은 인간의 영혼과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육체 또한 인간의 필수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읍니다(에제 36, 26 ; 애가 2, 11 ; 시편 16, 7-9).

2.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

구약성서 안에서 묘사되고 있는 인간은 갖가지 관계 속에 얽혀져 있는 존재로 이런 관계의 기초는 바로 하느님과의 관계가 그 근본을 이루는데 이 하느님과의 관계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즉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모두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에 의해서만 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선행 - 하느님의 선성에 의해서 가능)(창세 1, 26 이하 ; 5, 1 이하 ; 9, 6이하).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울인 것입니다(지혜 7, 26).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성서는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될 수 없는 것이고 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사회문제 - 흉악범에 대한 시사 언급).

 

3. 공존의 관계를 지니고 살아가는 인간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공존관계는 일차적으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관계는 이 하느님과의 일차적 관계 안에서 드러나고 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느님과의 관계 :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는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과의 관계를 단절하시고자 한다면 인간은 그 순간부터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에 인간은 하느님께 철저히 매여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편에서 볼때 손해보는 듯한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무상으로 생명을 주셨고 이 생명을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도록 하시기 위한 은총을 또한 베풀고 계시며 인간이 당신께 대한 불신으로 관계가 단절되는 처지에 이르더라도 인간의 회개를 보고 용서하시며 다시 인간이 당신과의 관계를 계속할 수 있도록 예언자들을 통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이사 64, 1 이하).

 

구약성서에서는 이런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부부의 관계로 묘사하기도 합니다(에제 16, 4-8 ; 이사 54, 5 이하).

 

 

 

 

2) 타인과 공존하는 인간

 

인간이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상에 나 혼자 산다면 존엄성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특성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 각자가 속한 단체 안에서 그 존엄성을 인정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열왕 후 23, 3 ; 예레 1, 5).

 

따라서 인간은 상호간에 서로 그 존엄성을 인정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여야 한다는 요청일 것입니다(레위 19, 9-18). 그러면서도 아울러 책임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책임감은 부부간 지켜야 하는 책임감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결혼을 하게 되면 이제 '한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상호간에 책임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입니다(2, 18-24).

 

4. 기도하는 인간

인간은 그 생명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부단히 쫓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먼저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이때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하여야 하는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려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받았을 때 우리 인간은 당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당신의 진노하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품안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기도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시편의 저자들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과거의 은총들을 생각하게 되고 여기서 우리가 많은 죄를 지었지만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의 죄를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5. 죄 많은 인간과 인간회복

죄악이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위대함을 잊고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죄는 교만에서 유래됩니다. 그 예를 성서에서 보면 , ① 아담과 에와의 죄 : 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창세 3, 5 이하) 인간은 하느님께 많은 은총을 받았지만 뱀의 꾐에 빠져 그만 교만한 모습을 지니고 하느님의 위치를 넘보려 합니다. 그래서 낙원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합니다.

 

② 띠로 왕의 교만(에제 28장). ③ 느부갓네살 왕의 교만(다니엘서)

 

이렇게 인간은 오랜 역사를 거쳐오면서 많은 죄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인간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 왔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용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나약으로 죄에 빠졌지만 하느님의 용서는 다시 인간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로 회복시켜서 인간 고유의 품위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회복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하느님의 또 하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그분의 은총입니다(참조 예레 31 ; 에제 36).

 

그런데 이런 하느님의 은총에 인간은 회개라는 응답을 하느님께 드리도록 구약성서는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습니다(시편 51).

 

종 합 :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영육의 단순한 합성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로 영,육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선하심을 보여야 하며, 아울러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공존관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 관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상으로 베푸시는 은혜로서 여기에는 생명이 있으며, 이런 하느님의 은혜에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는 관계를 지니고 살아갈 수 있으며 당연히 사랑의 관계를 나와 같은 피조물과 나누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께 열려져 있는 개방된 존재로 항상 기도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살피고 이것을 생활에 실천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그분의 모상을 지니고 있지만 나약성으로 인해 범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회개를 원하시면서 우리에게 다시 하느님의 사랑을 지닐 수 있는 관계를 마련하십니다.

 

심 화 :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인간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살고자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빠짐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고귀한 가치를 저버리는 것으로 항상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죄에 대한 무감각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 동료 이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이웃이 바로 하느님의 모상이라고 생각하고 그 고귀한 가치를 인정하고자 합니까? 우리가 만사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아담이나 띠로 왕 같이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으로 하느님께 향하는 삶이 아니며 이것은 기도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서 자포자기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는가 생각하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자포자기하는 삶은 하느님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입니다.

응용 실천 : 인간의 품위있는 행동의 실천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호 식품에 대한 매력에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들(음란 비디오, 잡지, 영화)을 가까이 하지는 않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의 가치를 해롭게 하는 것들임으로 우리가 삼가하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이웃의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의 관계를 전하려 노력하고 있는가 생각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웃이나 직장 동료가 나의 성공에 도구가 되지는 않았는가 생각하고 만약 그런 모습이 나에게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보상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언행에 있어서 이웃을 무시하는 것은 없었는지 생각하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입니다. 나는 어느 정도 기도하려고 노력합니까? 하루 중 어느 정도의 시간을 내서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비자로서 여러분의 처지에 어려운 것일지 모르지만 가족이 함께 하는 기도시간을 마련하도록 노력합시다. 이것이 어려우시다면 생활을 함께 반성하는 시간을 지니도록 노력합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우리의 교만한 생각들 즉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들에 대하여 이제는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해결하도록 노력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적 모든 교만적 요소(학벌, 능력, 재력)에 대하여 겸손한 자세를 지니도록 노력합시다.

 

☞ 하느님 말씀에의 초대 [시편 23(24), 3-6]

□ 깨끗한 마음 □

 

야훼의 산으로 오를 이 누구인고 ?

 

거룩한 그곳에서 있을 이 누구인고 ?|

 

그 손은 깨끗하고 마음 정한 이,

 

헛군데에 정신을 아니 쓰는 이로다.

 

이웃에게 거짓으로 맹서 않는 이로다.

 

야훼님이 그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갚음을 받으리라.

 

이런 이야 주님을 찾는 족속,

 

야곱의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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