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醉 취醉 김주혜 와인을 따라보면 안다. 만남이 얼마나 설레는지. 물방울 같은 잔에 은밀한 색으로 떨어지는 매혹을 보면 안다.입맞춤이 얼마나 달콤한지. 글라스에 찰랑이며 하늘거리는 주평선酒平線을 보면 안다. 주고받는 눈길이 얼마나 아득한지. 쟁그랑 부딪쳐 보면 안다. 이름을 불러.. 나의 시 2013.12.11
나는 밤마다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꾼다 나는 밤마다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꾼다 김주혜 동산만한 해를 쫓아가다 곤두박질 했어요. 신발 한 짝은 지느러미가 돋아 바다 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한 짝은 날개가 달려 하늘로 올라갔어요 나는 맨발로 새벽까지 걸어나왔죠 그곳에는 맨발의 사람들이 모여 내림굿을 하고 있었어.. 나의 시 2013.11.20
스트레스 스트레스 김주혜 섬진강산 물고기 한 마리를 욕조에 풀어놓았다. 놈은 낚시바늘을 입에 꽂고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튕겨져 나온 회색빛 눈망울을 굴리며 부르튼 입술로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엇다 놈은 함성을 지르고 싶은 것을 참고 있음이 분명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내 손을 거칠.. 나의 시 2013.11.18
억장億丈 億丈억장 김주혜 10년 동안 자리 잡힐 대로 잡힌 봉분을 파헤치기로 했다. 背山臨水 左靑龍 右白虎 누가 봐도 명당자리에 아버지집을 짓고,잊을 만하면 술 석 잔 뿌리고 효녀인 양 살다, 삶에 죽을 듯이 지칠 즈음 아무래도 이 팔자 꼬인 것은 명당값도 못하는 조상탓인 것 같아 아버지집.. 나의 시 2013.11.08
[스크랩] 한밤, 꽃방을 들여다보다 한 밤, 꽃방을 들여다보다 김 주 혜 사랑하는 법을 몰라서 꽃방이 어둡다 꽃마다 노을빛 칼금 긋는 소리 은하처럼 반짝인다. -시집, 연꽃마을 별똥별 중에서- 나의 시 2013.11.05
벙어리사랑 벙어리사랑 김주혜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가 입을 열고 나무가 몸을 열어 내 몸의 독소를 빨아먹으면 나는 해독된 채 나무의 입에 나무의 가슴에 수런수런 움을 틔운다. 한 열정적인 나무를 내 안에 들여앉히고 나는 벙어리 사랑을 시작한다. 눈멀고 귀.. 나의 시 2013.11.05
측백나무와 별과 길 측백나무와 별과 길 김주혜 서둘지 않고 떠나온 그 길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어 아주 작은 흔들림으로 일어나 걸었어, 걸으면서 강하게 내려 쪼이는 싱싱한 별들과 만나고 싶었어 빈센트 반 고흐를... 해바라기처럼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모든 갈증과 귀가 아프게 싸우는 그의 노여움을.. 나의 시 2013.11.05
주홍글씨 주홍글씨 김주혜 간통, 유죄 선고를 받고 숨을 훅 들이키니 누군가 손목을 잡아끌었다 내 입술에서 루즈를 지우고 장신구를 하나씩 떼어냈다 새우처럼 등을 구부려 척추 한가운데 바늘을 꽂고는 내게 명령했다 - 발가락을 움직여 봐. 혈관 속으로 에테르의 방울이 흘러 들어가고 흰 벽이,.. 나의 시 2013.11.05
지구가 아프다는데 지구가 아프다는데 김주혜 된장찌개 좀 끓이지 아침부터 웬 찌개 타령이람 투덜대며 두부를 자르다 손가락을 베었다 아주 작은 상처 주위로 물려드는 통증 날 선 칼을 놓고 손목을 움켜쥐며 발을 동동 렌지 위에 된장찌개는 팔팔 끓고 나는 빨간약 빨간약 하며 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피.. 나의 시 2013.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