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剪枝 전지剪枝 김주혜 벤저민 가지가 수상하다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고 한쪽에서만 잎이 돋아나더니 제 몸의 생살 도려내고도 모자란 지 어린 가지에 엉겨 붙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가만히 보니, 병들어버린 가지를 쳐주고 누렇게 변한 잎새를 떼어내 준 지난겨울부터 반란이 일어난 것 같다 .. 나의 시 2015.03.17
약속의 정원/ 성모성월에 바치는 . 약속의 정원 ㅡ성모성월에 바치는 김주혜 해마다 오월이 오면, 가장 아름다운 꽃을 어머니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정원을 돌아봅니다. 부끄럽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앓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가슴만 쓸어달라는 응석받이로 올해도 자갈과 잡초만이 무성합니다. 그러나 보세요. 저희가 .. 나의 시 2015.03.13
벙어리사랑 " 벙어리사랑 김주혜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가 입을 열고 나무가 몸을 열어 내 몸의 독소를 빨아먹으면 나는 해독된 채 나무의 입에 나무의 가슴에 수런수런 움을 틔운다. 한 열정적인 나무를 내 안에 들여앉히고 나는 벙어리 사랑을 시작한다. 눈 멀고 .. 나의 시 2015.03.11
오석烏石 오석烏石 김주혜 길 떠난지 석삼 년 줄곧 당신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때로는 썰물이다가 때로는 밀물이다가 한나절 끼룩끼룩 울어대는 눈먼 갈매기다가 마침내 다 닳아버린 외진 바 닷가 검은 돌이 되었습니다. 몇 날 며칠 화강암 주위를 맴돌다 멋진 말 한 필을 끌어 낸 어느 조각가.. 나의 시 2015.02.15
누구라도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 누구라도 내 이름을 불러 주세요 김주혜 가을, 하늘, 햇빛, 열매......,이 모든 것을 입 안 가득 넣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 아까운 것들, 한꺼번에 삼킬 수도 없고 뱉을 수도 없어 우물거리며 고개만 설레설레 저었다. 귀뚜라미 한 마리가 투명한 껍질을 벗으며 .. 나의 시 2014.12.01
약속의 정원 약속의 정원 김주혜 해마다 오월이 오면,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을 어머니께 바치겠다고 약속한 그동안 저희들이 가꾼 정원을 돌아봅니다. 이웃사랑의 정원 믿음과 봉사의 정원 회개와 용서의 정원 그리고 나눔과 감사의 정원.... 부끄럽습니다. 몸과 마음 모두 다 바친다고 입으로만 .. 나의 시 2014.05.14
노스님 노스님 김주혜 대웅전 용마루 끝 굽은 노송 한 그루 서별당을 지키고 서 있다 노스님 한 분이 앉았던 그 자리 그 그늘에 법어가 깔리고 고무신 한 쌍 하얗게 엎디어 있다 햇빛 한 자락 화엄의 꽃을 피우며 향기에 취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늘 비워두어도 가득차는 마음 향내음 자락과 얼키.. 나의 시 2014.05.06
새봄 사모곡. 19 -새봄 김주혜 올해는 꽃이 피어도 반길 일이 없겠다 조그만 새순에도 눈인사하시더니 산책길 이마에 떨어진 새똥에도 반가워하시더니 발아래 저 강물도 밤새 울어 흐느끼누나 그 아득한 잔물결에 내 눈이 뿌옇다 산굽이마다 꾸짖는 소리 고동치는데 나무들 어혈 맺혀 옹이마.. 나의 시 2014.03.31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땐 시계를 본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땐 시계를 본다 김주혜 지금, 내 시계는 태엽이 풀렸다 아니, 스스로 시계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두 개의 바늘은 비뚤어진 소리를 내며 서로 맞물려 있다 금빛의 벌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아직 다하지 못한 말을 중얼거리듯이.... 조용해라, 삐죽거리는 입을 틀.. 나의 시 2014.01.07
일몰, 보물 제 1호 일몰, 보물 제 1호 김주혜 방안 가득 쌓인 책 정리를 한다 1946년 판, 금각사, 죄와 벌, 여자의 일생 손도 대지 못하게 하던 곰팡이 냄새 절은 세로쓰기의 문고들도 한 귀퉁이로 던진다 십여 리를 걸어 빌려왔다던 쓰디쓴 기억들도 함께 책장마다 그의 체취가 폴폴 배어나와 눈이 아리다 좀.. 나의 시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