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편지 침묵 편지 김주혜 너와 나의 만남은 동부새가 불어 언 땅을 녹이고 바닷물이 바위를 깨부수는 일, 날줄과 씨줄이 바뀌고 천지가 갈라져 고름이 철철 흐르는 일. 더듬이처럼 두 귀를 세우고 더 이상 들려오는 메시지가 없는 길목까지 눈물 지르밟고 돌아오는 일. 그 가슴 저리고 훈훈한 한때, 그대처럼 .. 나의 시 2009.12.21
연꽃마을 별똥별 연꽃마을 별똥별 김주혜 그가 보고 싶어 연꽃마을로 달려왔다. 숨은 듯이 참선 參禪을 하고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부좌跏趺坐 하고 앉은 그의 손가락 끝에 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잠자리도 흠칫 몸을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별똥별 한 줄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 나의 시 2009.05.02
할미꽃 할미꽃 김주혜 아버지는 내가 갈 때마다 늘 새로운 걸 보여 주신다. 싸리나무 한그루를 키우시어 마당을 쓸 때마다 생각나게 하시고 청띠 신선나비와 사슴벌레 한 쌍은 멋진 박제로 남아 간간이 산속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하늘 닿을 듯 높은 산을 올려다보며 나는 올해는 어떤 걸로 나를 반기시려.. 나의 시 2009.03.30
침묵편지 ♤ 침묵 편지 김주혜 너와 나의 만남은 동부새가 불어 언 땅을 녹이고 바닷물이 바위를 깨부수는 일, 날줄과 씨줄이 바뀌고 천지가 갈라져 고름이 철철 흐르는 일, 더듬이처럼 두 귀를 세우고 더이상 들려오는 메시지가 없는 길목까지 눈물 지르밟고 돌아오는 일, 그 가슴 저리고 훈훈한 한때, 그대처.. 나의 시 2009.02.16
일몰, 매실주 항아리를 여니 일몰, 매실주 항아리를 여니 김주혜 열어볼 시기를 넘긴 매실주 항아리를 열었다 울컥, 갇혀있던 거품 같은 기억들이 뿌글뿌글 올라와 눈앞을 흐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간 밖으로 흘러넘치는 끈적끈적한 아픔들 한때는 알알이 기쁨이었던 흔적들이 햇살도 꺾인 비좁은 형틀에 갇혀 밀려나는, 입 .. 나의 시 2009.02.03
별을 따러 간 남자 꼭 내리는 빗방울만큼만 당신을 애태우며 울고 싶었습니다 꼭 흐르는 저 맑은 시냇물만큼만 그대 가슴에 예쁘게 흐르고 싶었습니다 꼭 쌓이는 저 순백의 눈만큼만 그대 가슴에 쌓이고 싶었습니다 꼭 붉게 타오르는 노을만큼만 그대 삶에 사랑으로 붉게 깔리고 싶었습니다 꼭 살포시 피어나는 안개처.. 나의 시 2009.02.03
벙어리사랑 벙어리 사랑 / 김주혜 내 가슴 속에 살아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무가 입을 열고 나무가 몸을 열어 내 몸의 독소를 빨아먹으면 나는 해독된 채 나무의 입에 나무의 가슴에 수런수런 움을 틔운다.8 한 열정적인 나무를 내 안에 들여앉히고 나는 벙어리 사랑을 시작한다. 눈멀고 귀먹어도 나는.. 나의 시 2008.12.22
슴새 슴새 김주혜 날개가 길어 날지 못하는 슴새를 아시나요? 바람의 방향으로 날아가야만 하는 까마귀쫑나무 그늘의 슴새 조금씩 키워온 기다림의 그 깊은 마음이 시간이 갈수록 날개만 공허하게 커지고 그 안에 칸칸이 들어찬 어둠 생의 무게처럼 한평생 짊어져야 할 날개 무게에 부리를 박.. 나의 시 2008.11.22
에밀리 디킨슨에게 에밀리 디킨슨에게 - 김주혜- 그 옷을 벗어버리세요 당신이 흰옷을 즐겨 입는 이유를 알아요 당신처럼 사랑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은 나도 하루하루 죽음과 벗하고 살고 있어요 당신이 검은 리본으로 세상과의 단절을 선언하고 평생 흰옷으로 굳게 닫힌 마음을 보이자 나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렸.. 나의 시 2008.10.27
그 날, 그 시간, 그 어둠 그 날, 그 시간, 그 어둠 김주혜 해가 저문다. 주위에 빛나던 것들 서서히 빛을 추슬러도 모든 사물들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적막이 길게 가로지르고, 새들도 둥지를 찾아 떠났다 어둠이 내리나 둘레의 꽃들은 향기를 잃지 않고 있다. 바람은 대낮보다 더 싱그럽고 풀향기는 새벽처럼 짙게 속삭인다. .. 나의 시 2008.10.21